전 어부의 아들입니다
25년 11월 12일 아침 09시 56분
아침이 늦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누워 있었던 건 아니다. 가족들이 하나 둘 일어나서 글쓰기를 늦췄을 뿐이다. 덕분에 아침에 집 앞 마트에 가서 바나나도 사 왔다. 그리고 평소에 거의 가보지 않던 부둣가에 가서 한때 어부의 아들임을 잊지 않았다. 배를 보면 반가운 마음도 드는데, 한편으로 고생하셨던 부모님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어부의 아들이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어부는 아니셨고, 외항선을 타시는 선원에서 군산으로 와 본격적으로 어부의 길을 가게 되셨다. 내가 군산에 이사 오게 된 것도 아버지가 어부의 삶을 시작하게 되어 그렇게 되었다. 이 선택이 없었다면 지금 이 글도 쓰고 있지 못할 것이다. 이건 모두 아버지가 그려 놓은 신 큰 그림일까?
부산에서 생활할 때 주변 친구들의 아버지 직업도 선원이 많으셨다. 어선보다는 상선을 타시는 아버지들이 많았기에 선원을 아버지로 둔 친구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감정이 있었다. 그건 바로 매일 아버지를 볼 수 없는 그리움이란 감정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선원자녀 편지 쓰기 대회도 열렸었고, 매번 나는 그 편지 쓰기 대회에 참석했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연히 입상자의 편지 내용을 선생님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듣게 되었는데, 그 표현을 들으니 나도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아직도 그 표현이 기억에 남아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 표현의 영향인지 나도 나의 아버지처럼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일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었다. 그래서 부산-창원 출퇴근할 때도 매번 집에서 창원을 오가곤 했다. 힘들었는데, 방을 하나 구하면 될 건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어릴 때 그 다짐 때문은 아니었을까?
입상자의 편지내용은 이러했다. ‘ 매일 다른 아버지들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시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렇지 않아 보고 싶다’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옆집 친구 아버지들은 모두 매일 아침저녁으로 뵙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주현미 씨의 노래처럼 ‘길면 3년 짧으면 1년’을 가족과 떨어져 객지에서 보내야 했기에, 특히나 어린 우리들에게는 아버지의 부재가, 함께하지 못함이 늘 아쉽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군산으로 이사 와서 이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평균적인 모습의 가족과는 차이가 있었다.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아버지를 뵙지 못하는 건 똑같은 일이었고, 그 남아 몇 개월에 한 번씩은 볼 수 있게 되었던 게 부산 생활보다는 많이 개선된 아버지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조업을 마치고 들어와 휴식기를 가지실 때면 늘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마침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휴식기였기에, 방학은 거의 아버지와 같이 일과를 시작하고 마치곤 했다. 매일 배에 따라다녔고, 수리를 위해 조선소 도크에 배를 올려놓으면 그곳은 나의 출근 장소로 변모되었다. 매일 아버지 심부름을 하며 점심때마다 시켜주신 짜장면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배에서 배려진 전자제품에서 자석과 진공관등을 분해하면서 놀던 이곳은 나의 놀이장소이자 아버지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과 추억을 선물해 준 행복의 보물창고였다. 매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돕겠다고 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일거리만 더 늘려서 불효를 하곤 했다. 옷 주변에 뭍은 기름과 각종 얼룩은 어머니의 빨래에 더욱 수고로움을 안겨드렸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몰골을 본 친구들은 ‘어디서 일하냐’며 물어보곤 했고, 난 ‘아빠 따라 배에 다녀오는 길’이라 웃으면서 대답하곤 했다.
초등학교 마칠 때까지는 방학 때마다 아버지를 따라 매번 배에 갔었고, 고등학교 넘어서는 어쩌다 한 번씩 배에 갔던 거 같다. 배에 갈 때마다 풍어를 기원하고 아버지와 선원들의 안전을 기도했다. 이렇게 좋아했던 배인데, 오늘 아침 부둣가를 걸으며 정박해 있는 어선들을 보게 되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배에는 특유의 향이 있다. 기름 향 같기도 하고 비릿한 향 같기도 한 그 설명하기 힘든 그향. 오늘도 부둣가를 거닐며 그 향기가 어릴 적 나의 추억을 꺼내어 주었다.
올해 아버지는 어부라는 직업을 끝마치고, 바다와 생활을 마무리 지으셨다. 매번 변화는 바다에서 생활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감히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바다 위에서 일어났을 텐데. 우릴 위해 그런 힘든 직업을 택하시고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힘써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미안하다.
우연히 동네 부둣가를 걸으며 아버지와 배에 대해 추억했다. 오늘은 날이 맑다. 바다에서 조업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풍어와 안전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작은 아버지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