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그리고 개타
25년 12월 23일 저녁 10시
한 달 만에 글을 쓴다. 이유는 다들 아실 거라 믿는다. 면접을 보았고 1주일 안에 입사가 결정되어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그래도 열심히 글을 써 왔으면 되었을 것인데, 괜히 출퇴근의 감정을 느끼며, 위안과 휴식을 준다며 글을 쓰지 않았다. 주말에도 아침마다 쓸 기회가 있었지만, 책 읽기로 시간을 보내 버렸다. 오늘 이렇게 내일 발행해야 하는 글을 위해 마치 마감에 쫓기는 작가처럼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아직 소개하지 않은 S(영감), 그리고 K(개태)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두 친구 모두 고2 때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S는 선제리 출신이었고, K는 바로 학교 옆 조촌동 거주자였다. (정확히 개태가 어디 출신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조촌동 거주자라 밝혀둡니다.)
S는 한 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해야 했고, 그에 비해 K는 걸어서 10분 안에 등교를 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인해 우리는 가끔씩 K의 집에 단체로 몰려가 어머니나 누나에게 인사드리며 신세를 지곤 했다. 20살이 되어서는 S의 집에도 놀러를 갔는데 그때 우리는 담금주 전용 소주를 사들고 S의 방에서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하며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S는 중간이었고, 위로는 형과 아래로 여동생이 있었다. 여동생과는 거의 마주치지 않아 기억이 없고, 형님과는 가끔 소주 한잔씩 한 기억이 나지만 그리 자주는 아니었다.
S의 집은 군산에서도 조금 외곽에 있었기에, 대중교통으로 움직였던 20살 시절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지역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다들 차로 움직여서 예전처럼 외곽이다? 이런 느낌은 전혀 없다. 오히려 공기 좋고 풍경 좋은 곳에 살고 있는 게 부러워지는 곳이라고 할까. S의 집은 ‘ㄱ’ 자 구조로 되어 있었고 서로 연결되지 않은 구조여서 S의 방은 독립공간이었다. 밤새 떠들고 놀아도 소음이 안방까지 전달되지 않아 어른들의 핀잔을 듣지는 않았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어르신들이 시끄러운 소음에도 불구하고 너그럽게 이해를 해주신 게 아닌가 싶다. S의 집에서 새벽을 맞고 아침에 근처 학교에 가서 농구를 하며 지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시 S의 집에 놀러 간다면 농구하러 가자고 조르고 싶다.
K의 집은 학교 앞. 한 살 많은 누나가 있었고, 아파트였다. 가끔 누나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우리가 누나의 지적 수준 및 의식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기에 누나는 우리와 이야기 나누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 남자의 정신연령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어렸다고 누가 얼핏 말한 거 같은데. 그런 연유로 아마 누나는 우리들의 방문을 볼 때 매번 답답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동생은 호리호리 하고 귀염상인데 우리들은 키 큰 놈, 키 작은놈, 얼굴 긴 놈, 까만 놈 이렇게 다양했으니 내가 누나의 입장에서 우리들의 무리를 보았다면, 나 역시 답답함을 느끼며 바로 냉장고 냉수나 사이다를 찾았을 것 같다.
K의 집이 학교 앞에 있어서 좋았던 건 시간과 이동거리를 짧게 해 주었다는 것. 학교 마치면 다 같이 바로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기에 누구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도 없고 혹여 늦어지면 바로 K의 집으로 오라 하면 되었으니 우리들이 만나서 놀 시간을 많은 부분 세이브 해주었다.
이렇게 뭉쳐 다니며 놀다가 대학생이 되어서 흩어지게 되었고, 방학 때가 되면 또다시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우리들만의 추억을 만들었었다.
K는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 났고, 유학 중 우연히 부산을 방문하게 되어서 잠깐이지만 이곳 부산에서 만났던 적도 있다. 지금은 결혼을 해서 제주도에서 열심히 환경을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우리 첫째와 K의 둘째 생일이 같다.
K는 우리 친구들 중에 두 번째로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유학을 떠났던가 그랬고, 그때 인터넷 전화가 생겼을 즈음인데 인터넷 전화로 내가 결혼할 때쯤 축하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참 우리가 스무 살 때 K의 어머니가 식당을 오픈하셨는데, 그때 우리도 성인이라며 그곳을 찾아가서 음식도 시키고 맥주도 주문해서 마시며 식당개업을 축하해 드렸었다. 다음날 신검이 있었나? 알바가 있었나? 무슨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축하가 우선이라며 친구들 모두 열심히 맥주의 탄산을 느끼며 다음 일정을 잊은 사람처럼 마셨던 기억도 난다.
그때 분명 누군가 취해서 무슨 이벤트가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S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싱글로 살고 있는데 친구들 중 내가 K 다음으로 3번째로 결혼한 이후 아무도 결혼소식을 알려오지 않고 있다. 내가 10년쯤에 결혼했으니 벌써 15년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아무도 누구도 누구 하나 없다. 대단한 놈들.
S는 전주에서 혼자 살고 있다. 독거노인도 아닌데 다른 친구들처럼 혼자 산다. 아무리 나 혼자 산다가 유행이라지만 그건 잠깐이라 생각했는데. 이놈들 끈질기다.
두서없이 소개를 했는데, 많이 부족한 부분이 있는 점 이해를 부탁하고, 이 글을 쓰니 너희들과 함께 했던 에피소드랑 웃음들이 떠오른다. 갑자기 보고 싶어 지네.
내일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안부전화 한번 해 봐야겠네.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