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님이 오해하시게 하면 안 돼요!

나의 부족이다. 상사가 오해를 절대 못하게 해라

by 시쓰남

26년 1월 21일 저녁 10시 16분


오늘은 출근하기 싫었다. 내일도 출근하기 싫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도 아니고 요 며칠 몸이 안 좋아서도 아니다. 어제부터 출장 온 J를 보기 싫어서 그랬다. 오늘내일 같이 미팅을 다녀야 했다. 그게 너무 싫었다. 미팅장소를 오가는 동안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넓지 않은 공간에서 J를 마주 할 자신이 없었다.


오늘내일 같이 미팅을 다니는 건 저번주부터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급하게 거래처에 연락을 하고 약속시간을 잡아 일정을 정리했다. 하지만 어제 내려와 아침부터 J와 회의하기로 한 계획은 전혀 공유받지 못했기에, 갑자기 아침부터 미팅하자며, 회의자료 가지고 들어오라는 말에 잠시 모든 나의 신경회로가 멈추었다. ‘어? 회의를 언제 한다고 이런 말은 없었는데?’ 나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사전에 공유되지 않은 '회의'라는 소리에 모두들 놀라는 눈치다. 회의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소리에 J가 언성을 높이며, 너희들은 뭐 하는 존재냐며, 우리의 존재를 부정한다. 자기가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인데 지금 나에게 이런 대우를 할 수 있냐며, 대우하지 못한 우리를 나무란다. 오늘 회의가 예정된 걸 아무도 몰랐다고 대답하니 어찌 모두 모를 수가 있냐며, 모두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냐고, 그동안 우리 각자의 사회경력과 짬을 무시한다.

오해라며 진정하라는 말에 더더욱 신이 난 듯 목청 높여 이야기한다. “오해? 오해하게 만들 니들이 잘못한 거 아냐?”라고 대받아 친다. ‘네가 혼자 오해한 거라고, 근데 왜? 오해하게 만든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는 거지?’ 보통은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오해를 하게 만든 우리들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그동안 몸에 쌓아왔을지도 모르는 온갖 쓰레기를 토해낸다. 그 소음과 쓰레기를 듣고 있자니, 나도 마음이 요동치고 더 심하게 토해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같은 놈’이 될 거니까.

나도 나름 사회생활 반평생 해오면서 산전수전 다 지내왔는데 너 같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 아직도 이 회사에 살아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 다면평가등을 통해 상사도 꼭 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바로 아웃일 것이다. 요즘 나라님도 못하면 탄핵시키고 새 인물로 갈아 치우는데, 그깟 상사쯤이야. 이거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닐까?

내가 처음 사회생활 할 때야 상사가 욕도 하고 드라마처럼 서류도 집어던지곤 했다. 그래도 그것은 과했다는 평들을 하며 상사를 욕하곤 했는데, 요즘 시대에 이런 드라마를 찍고 있다면, 이건 바로 노동청에 고발 접수되지 않을까? 고발 타이틀은 ‘회사 내 갑질’

이런 갑질을 당하고 나니 오늘내일 미팅을 같이 다닐 용기가 없었다. 또 어떤 갑질을 당할까 두렵고 무서웠다. 아침이 밝았고, 출근을 했고, J가 오기를 기다렸다. 9시 넘에 J가 사무실에 들어왔고 어제부터 찾던 그놈의 회의자료를 또 달라고 요청한다. 회의는 필요 없다며, 혼자 검토할 테니 자료만 주고 나가보란다. 뭐지 어제부터 이거 보고 회의하고 싶어서 기리기리 고래고래 소리 지른 거 아니었나?


잠시 후 회의자료 피드백은 없고, 오늘 출장 마무리하고 본사로 바로 복귀할 거라 했다. 외부 미팅은 우리들끼리 다니라 한다.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어제저녁부터 아침까지 쌓여있던 불편한 무언가가 시원하게 내려간다. 어렴풋이 통화내용을 들으니 30분 정도 있으면 사무실을 나갈 거 같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고, 짐을 들고 사무실을 나간다. 평소 같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잘 가시라 인사만 할 건데, 구두로 갈아 신고 엘버타는 공간까지 배웅하러 따라간다. 왜들 다들 나오냐며, 들어가라고 하는데, '너 간다니 좋아서 그런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J가 가고 우리끼리 외부 미팅을 다니며 J가 같이 오지 못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오늘부터 J는 우리를 더욱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것이다. 안다 너의 인성을. 실컷 해라. 대신에 내려오지는 말고. 네가 내려오면 나도 같이 쓰레기 인성이 되는 것 같아 힘들다. 네가 빨리 여기를 떠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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