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도 밟으면...
26년 2월 09일 저녁 10시 04분
입춘이 지났는데 더 추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곧 삼월이 온다는 걸 알고 있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겨울이가 한파를 만드는 중인 것 같다. 나의 마음에도 한파가 불고 있다.
퇴사 일정 관련해서 본부장과 팀장의 협의는 아무 의미가 없었고, 저번과 같이 13일로 퇴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뭐야, 나랑 협의도 않고 지들 마음대로 정해서 하지 말라 했거늘-나는 20일에 퇴사를 하고 싶다고 의견을 살짝 제시했지만-내 의견은 무시되었다.
그렇지 사측 니들이 언제나 약자인 직원보다는 힘이 세다 이거지. 니들 힘이 세서 좋겠다. 매번 이런 식으로 직원을 정리하며 니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사측 편을 드는 너희들은 퇴사할 때 나와는 다른 대우를 받는 거겠지. 이런 힘없는 직원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니들은 살찌우고, 회사에 원가를 세이브했다고 광을 팔겠지. 그러면서 이런 악순환을 계속해서 되풀이하겠지. 결국 회사의 평판까지 니들이 빨아먹으며, 나중에는 말아먹게 되겠지. 이런 깨진 창문의 일원 같은 사람들이 없어져야 할 텐데. 물론 저들이 나를 보았을 때 내가 깨진 유리창으로 보이겠지만.
20일 퇴사일정 협의 메일을 보내며, 담당자에게 미안하다 사과를 했고, 마음에도 없는 업무 공백이 없이 마무리 잘하겠다고 잘 봐달라는 식으로 글을 썼다. 몇 번 썼다 지웠다 고민을 하다 결국 저 멘트를 넣어 메일을 보냈다. 비굴해 보였지만, 을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굳이 나가는 마당에 조용히 나가면 될 것을, 뭔 부기영화를 누릴 거라며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명분은 나 같은 사람이 또 생기질 않기를 사측이라는 갑의 횡포에 속절없이 당하지 말라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도 이 회사를 선택해서 다녔는데, 싫어지면 그냥 나가면 된다. 굳이 짧게 다닌 이 회사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회사에 바라는 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고, 그러면 회사는 왜 사람들이 나가는지 사유도 모를 것이며, 그 구닥다리 시스템은 자칭 최고의 시스템으로 인식되어 계속해서 이 회사 내부에서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안쓰럽고, 나가는 마당에 쓴소리 한번 해보고 나가서, 그게 조금이라도 시스템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찬 소망 때문이랄까. 드라마나 영화 보면 조금씩 반영도 되고 개선도 되고 하는 것 같던데, 현실은 아마 미친놈 헛소리 하고 나간다고, 진상이 나가면서 별소리 다한다고 아마 욕만 하지 않을까 싶다. 벌써 서울 본사 높은 분들의 입에는 내가 쓰레기로 변해있을 것이며, 상종 못할 종자로 낙인찍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아셔라.
나도 니들은 상종불가 종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사회생활에서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 할 테니.
퇴사일정 협의에 관해 사측의 행동을 보며,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분들과의 관계는 언제든지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걸. 다 같이 한 팀으로 열심히 해보자 구호를 외치다가도 누가 하나 퇴사라는 배신을 하면 그때부터는 180도 입장을 달리 하면서 빨리 나가라고, 너는 필요 없다고 등 돌리는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그러고도 네가 리더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왜 떠나는지는 중요치 않고 떠나려 한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불손하고 도의에 맞지 않다고 여기는 너를 내가 리더로 섬겼고, 따랐고, 같이 파이팅 구호를 외친 게 지금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면서 배웠다. 물론 나에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너 같은 리더는 되지 말아야지. 그리고 헤어질 때는 무조건 수고했다, 그리고 앞길에 축복이 함께 하라고 꼭 덕담을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물론 여기저기 다양한 리더가 있을 것이다. 비겁한 리더, 옹졸한 리더, 치졸한 리더, 깜도 안 되는 리더 등. 하지만 이런 리더들만은 있는 건 아니기에 이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이번 회사 생활에서 이런 리더를 보았기에 다음에 또 어떤 리더를 만나게 될지 궁금해지고 나 또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궁금해지지만, 저 리더처럼은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한 가지는 확실히 배운 것 같다.
다 나만의 입장이고, 내 생각이라 리더의 입장은 무시한 체 글을 전개한 점은 너그러이 이해해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아직도 감정이 이성을 억누르고 있어 객관적이지 못한 점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내일은 제가 보낸 메일에 어떻게 회신이 올지 궁금하며, 하루를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