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려니 나가라네

나는 그저 대체품

by 시쓰남

26년 2월 7일 오전 08시 01분


명절 연휴를 일주일 앞둔 주말이다. 요 며칠 몸이 아파서 그리고 귀차니즘으로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일상은 매일 새로운 일과가 시작되듯 어제와 다른 시간들을 보냈고 또 나의 전투력을 끌어올리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의 전투력을 끌어올리게 한 사건은 HR의 업무처리 방식. HR이라고 하기보다는 사측의 입장을 반영한 업무처리 방식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퇴사를 함에 있어 취업규칙을 보니 한 달 전 통보를 하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그 기준에 맞추어 회사에 통보를 했더니, 본부장이라는 사람은 “ 당장 나가라고 해, 여기 영업직 직원들은 그만둔다고 하면 보통 2~3일 내로 퇴사했어”라고 당당하게 팀장님께 이야기했다고 한다. 퇴사원 작성도 하지 않고 구두로 먼저 말을 했을 뿐인데 2~3일 내로 나가라고 회신을 준다고? 이렇게 빨리 퇴사 프로세스가 돌아간다고? 이것이 여기의 문화인가 싶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인수인계 내용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순전히 저의 입장입니다) 어떻게 기존에 같이 일했던 동료인데, 퇴사를 통보했다고 바로 나가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당장 이번 주에 그만두라는 말에 없던 정나미까지 뚝 떨어졌다.

팀장과 본부장의 협의로 20일까지 퇴사일정 협의를 마쳤다. 중간에 명절 연휴가 있어 일자가 조금 더 늘어났다.


다음날 아침. 20일이었던 퇴사일정이 갑자기 12일로 앞당겨졌다. HR에서 12일로 하자고 해서 본부장은 그 의견을 받아들여 12일로 통보가 내려왔다. 뭐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입장이 번복된 것이다. 뭐지 ‘이놈의 회사’, 하도 기가 차서 이래저래 알아보았더니 내가 퇴사를 하겠다고 통보를 해도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나의 퇴사 일정을 정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일방적인 퇴사일정 통보는 ‘부당해고’ 사유에 해당돼서 사측에 법적 책임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침 HR에서 퇴사원과 퇴사일정이 담긴 내용의 메일이 왔다.


조심스럽게 담당자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퇴사일정은 저와 협의를 해서 정해야 된다고 들었고, 민법 660조~~~ 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걸 옆에서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바로 보고를 했는지 HR본부장이 우리 팀장님께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무슨 법적 내용을 들먹이냐며~~ 알아서 잘 처리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나.

HR담당자도 바로 내게 전화가 와서 왜 12일로 일정을 통보하게 되었는지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유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명절까지 있다가 나가는 그 기간 동안의 나의 인건비가 아깝기 때문에 12일로 퇴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가 13일에 입사를 해서 곧 월차가 1개 더 생기니 그것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내 인건비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구멍가게도 아니고, 들어올 때는 어서 와서 열심히 해주세요 해 놓고서는. 진짜 들어와서 팀장님과 매월 1200km 이상을 돌아다녔고 매주 화~금은 외근을 다닌다고 수고를 했는데, 그런 건 관심이 없고 단지 나간다고 하는 사람이 명절까지 지내고 보내기에는 인건비가 아까우니 12일로 근무를 종료시켜야 한다는 말에 또 한 번 이 회사에 대한 이미지는 와르르 무너졌다. 업력이 50년이나 되어가는 회사가 왜 계속 성장하지 못하고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회의 시간에는 대기업 못지않은 마인드로 직원들을 쪼으고, 나무라며, 면박을 주지만, 회사 돌아가는 시스템은 대기업 스타일이 아닌 전형적인 소기업 마인드로, 그리고 어딜 가든 ‘사람’이 제일 중요한데 이곳에서는 사람은 대체품에 불과하다고 나는 느끼게 되었다.


나 말고 이전 여기 퇴사자에게서도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나에게도 막상 이런 일이 일어나니 정말 그렇구나, 그럼 이걸 모르고 열심히 영업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떡하지? 퇴사하기 전에 회사에서 사람을 이런 식으로 취급합니다를 알려야 하나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알려야 할까? 오지랖일까? 대표는 회사의 이런 문화를 알까? 설마 대표의 가이드였다면? 이런 회사는 절대 다니면 안 된다.


HR 담당자와 통화에서도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퇴사일정을 정해서 나에게 통보를 하는 건 리스크가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다시 어느 날짜로 퇴사 일정을 정할지 알려 달라고 한발 물러섰다. 오늘 또는 월요일 아침에 일정을 통보해 줄 건지 옵션을 주었고 나는 다음 주 월요일에 일정을 알려주겠다고 통보했다.


사람관계는 끊임없는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데, 왜 마직막에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이 부분이 요즘 들어 제일 아쉽게 느껴진다.

첫 만남의 셀러임처럼 마지막 헤어짐에도 분노나 저주가 아닌 격려와 따뜻한 성공을 빌어주는 그런 관계였으면 좋겠다.


참고로 이 회사에 누가 입사를 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절대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27화우리는 왜 계획을 세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