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극 J경주마의 사투

무거운 책임감

by 엄마사람

나는 스스로를 종종 ‘경주마’라고 부른다. 앞만 보고 달리는 말처럼, 내 하루는 정해진 레일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완주해야만 끝이 난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

모든 역할에서 100점을 맞고 싶은 나의 책임감은 때로 나를 숨 가쁘게 몰아붙이고 있다.


친구와의 약속이나 모임이 있는 날, 나의 극 J본능은 정점에 달한다.

남들은 옷을 고를 때 나는 냉장고를 채운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이 먹을 국과 반찬을 완벽하게 세팅해 두고, 남편의 아침도 챙겨놓을 계획을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내 몸은 밖으로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머릿속 시계는 집안의 톱니바퀴와 함께 돌아간다.

‘지금쯤 아이가 학원에서 왔겠지?', '아이들이 간식 잘 챙겨 먹고 있겠지?‘

이 모든 준비가 완벽해야만 나는 비로소 안심하고 ‘외출’이라는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다.

나에게 자유시간이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날의 치열한 노동으로 미리 벌어둔 ‘유급 휴가’ 같은 셈이다.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이어리에 적힌 할 일 목록에 체크 표시를 할 때의 쾌감은 상당하다.

아이들의 숙제 검사, 블로그 포스팅, 릴스 만들기. 그리고 집안일까지. 24시간을 1분 단위로 쪼개어 도둑맞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삶.

하지만 가끔 거울 속의 나를 보면, 결승선을 향해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경주마 한 마리가 서 있다.

“엄마는 왜 맨날 바빠?”라고 묻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이게 다 너희를 위한 엄마의 본분이야”라고 답하면서도,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시간을 지배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시간에 쫓기고 있는 걸까.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채찍질은 나를 성장하게 했지만, 때로는 틈새의 여유를 앗아가기도 했다.

이제는 시간을 도둑맞지 않는 법만큼이나, 시간을 기꺼이 흘려보내는 법도 배워보려 한다.

약속 전날 국을 끓여놓지 않아도, 한 끼 정도는 배달 음식으로 해결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100점이 아닌 80점짜리 하루여도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것.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조금은 넓히고, 옆에 피어난 꽃도 보며 달리는 24시간을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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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