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좁아져도 깊어지는 중입니다.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

by 엄마사람

나이가 들수록 인맥의 넓이보다는 깊이에 집착하게 된다.

특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맺어지는 관계들은 때로 유리그릇처럼 투명하면서도 아슬아슬하다.

24시간 중 대부분을 아이를 위해 쓰다 보니,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누구 엄마’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놀이터나 하교 길에서 만나는 동네 엄마들은 든든한 전우이자, 동시에 가장 어려운 타인이다.

우리는 아이의 학원 정보나 오늘 저녁 메뉴 같은 가벼운 이야기는 막힘없이 나누지만,

정작 아이의 문제 행동이나 교육에 대한 깊은 고민 앞에서는 입을 다문다.


“그 집 아이는 참 똑똑하네요.”

“아니에요, 집에서는 얼마나 말을 안 듣는데요.”


이런 뻔한 대화 속에 정답은 없다.

내 아이에 대한 조언이 자칫 간섭이나 비난으로 들릴까 봐,

혹은 우리 아이의 부족함이 소문이 날까 봐 우리는 서로의 영역 앞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사랑하지만 조심스럽고, 가깝지만 먼 ‘엄마 친구’라는 관계의 한계다.




그런 갈증을 해소해 준 곳이 바로 독서모임이다.

이곳에서는 누구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석 자로 불린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이 이야기가 아닌 ‘내 생각’을 꺼내놓기 시작했을 때, 관계의 밀도는 급격히 높아졌다.


“저는 요즘 이 문장을 읽으면서 너무 공감했어요. 지금의 제 모습 같아요. “


아이의 성적표보다 내 마음을 먼저 고백하는 사람들. 독서모임 멤버들과는 아이에 대한 조언 대신,

‘엄마인 나’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좁은 관계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해방감은 동네 백 바퀴를 도는 것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


예전에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이 모임 저 모임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보일 공간은 그리 많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까운 동네 엄마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예의를 갖추고, 마음이 맞는 독서모임 인연들과는 깊게 나를 찾아가는 일.

인간관계가 좁아진다는 건, 어쩌면 내 삶에 꼭 필요한 사람들만 남겨두는 정제 과정이 아닐까.

오늘도 책장을 넘기며 생각한다.

내 좁은 울타리 안에 들어온 이 귀한 인연들을 위해, 내일은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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