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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히

8시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

by 하늘빛

아침 8시 50분. 종이 친다.

아직 오지 않은 친구는 2명이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들에게 빨리 오라고 할 수 없다.

빨리 오라고 한 담임선생님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사고가 나거나 계단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내 책임이다.

조회 시간에 들어가 보니 아이들은 핸드폰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나는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면 안 된다. 나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그들이 나에게 욕을 하는 건 괜찮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나는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순간 촬영이라도 된다면 녹음이라도 된다면 나는 오늘 7시 뉴스에 메인으로 나올 것이다.

1교시 종이치고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오는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화장실을 보내줘야 한다. 그것은 학생이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화장실을 보내지 않는다면 나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 교사가 되기 때문이다.

수업을 하는 도중 어떤 아이가 서랍에 손을 넣은 채 핸드폰을 하고 있다. 나는 아이에게 묻는다. 좀 전에 핸드폰을 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아이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를 못 믿는 선생님이 정말 짜증 난다고 이야기한다. 명백한 증거가 없는 이상 내 말은 그저 아이를 의심한 교사가 될 뿐이다.


2교시 수업을 들어가는 중에 교과서가 없는 친구들이 여럿 보인다. 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야단칠 수 없다. 아이들은 어제 공부하려고 교과서를 가져갔을 뿐이라며 오히려 당당할 테니까 말이다.


3교시 공강 시간에 나는 오늘 병원 다녀온 아이들의 출결 상황 확인하고 보고해야 할 공문 2개를 처리하다 종이 쳤다.


4교시 수업 시간에 들어가니 몇몇 친구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흔들어 깨울 수도 없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를 수도 없다.


나는 점점 무기력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교육은 대체 왜 필요한 걸까.


점심시간에.
아프다는 친구들이 온다. 부모님들에게 전화를 한다. 오실 수 있는지 묻는다. 그냥 보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 책임이 된다. 아픈 것도 내 책임이다. 그냥 보냈다가 가는 중에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난 아이를 방치한 교사가 된다.


5교시 수업에 들어가 수업 내용 확인한다. 5반의 수업이 똑같아야 한다. 똑같은 곳에 밑줄을 긋고 똑같은 곳에 중요한 표시를 한다. 하나라도 다르면 안 된다. 나중에 하나라로 다르면 문제가 된다. 필기도 언제나 설명도 언제나 인공지능처럼 똑 같아야 한다. 학습지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언제든지 아이들은 학습지를 다시 받을 수 있다. 만약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나는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6교시에 수행평가 빠진 친구들 확인하고 언제 부를지 계획한다. 하루 이틀 사이가 아이들에게 점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한 공정하게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종례를 하러 교실에 들어왔다 청소를 시킨다. 제대로 청소를 못하지만 뭐라 할 수 없다. 나는 교사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청소의 뒷마무리는 그냥 나 혼자 조용히 한다. 분리수거통 안에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들이 뒤섞여 있다. 끈적거리는 쓰레기통 안에서 캔을 꺼내 분리수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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