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십시오.
- 외롭지 않아?
물음에 대한 답을 물음표로 마쳤다.
- 글쎄, 외로운가?
친구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장르다. ‘외로움’에 대해. 사랑은 여러 분류가 있다고 믿어왔다. 그 믿음은 여전하다. 사랑이 서류처럼 서랍에 정리되는 것이라면 텅 빈 서랍 또한 존재했다. 다만, 그 칸의 공백을 외로움이라 여기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친구의 질문이 마음에서 가시지 않았다. 몰랐던 부분에 대한 깨달음은 많은 질문을 생성하기 마련인데, 내 머릿속은 항상 과부하였다. 거기다 마음까지 질문 공세가 이어지니 체력이 부족할 지경이다.
내게 ‘사랑을 했었고’라는 과거형은 없고 현재 진행형만이 있다. 마음에 중간을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좋아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도 하다. 끝나버린 사랑은 말 그대로 끝. 무엇이든 끝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무섭고 싫다. 그래서 마음의 끝까지 가본 후에, 내 마음이 타당하다 여길 만큼 해본 후 ‘0’의 자국도 남지 않는, 시작이 없었던 무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성장하지 않는 마음이 되곤 했다. 상처의 이력이 남지 않는, 주름이 없는 마음에는 매 순간의 이별이 고통스럽다. 쌓아 놓은 경험치가 없는 것이다. 늘 새로운 고통을 마주한다. 융통성 없는 사랑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채워 놓은 애정만큼 사랑해야 이별도 할 수 있었다. 내가 외로웠던 순간은 혼자였던 때가 아니라, 함께였을 때. 끝까지 사랑하기 위해 마지막의 마지막 마음을 쏟아붓던 순간, 나는 무척 외로웠다.
마음의 끝은 정해진 규정이 없어서 시간으로 대신 정산한다. 새 살이 돋는 시간만큼 연고도 바르고 반창고도 붙이며 정성을 다해 신경을 쏟아야 상처가 남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쏟았을 애정을 다시 나에게 돌려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힘이 들었다. 마치 쏟아버린 물 잔에 다시 물을 채우는 일과 같다. 쏟는 것은 찰나이고 채우는 것은 쏟아진 것에 대한 수습부터 시작이니까.
외부적인 북적임은 나를 외롭게 해.
내부적인 공백은 나를 쓸쓸하게 해.
나는 내가 없을 때 외로워.
내가 가득한 방으로 들어가.
손바닥만 한 불빛만 있으면 돼.
준비된 자리에 앉아서
비워진 나를 채우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누려.
채워진 나를 챙겨 방 문을 나서면
맑은 오늘이 나를 맞이해.
반가워할 체력이 생긴 나는 미소로 답했어.
외로움은 어느 과정에서 끼어드는 감정인 걸까.
주름도 상처도 없는 마음은 과연 귀하게 자랐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네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