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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은 Oct 16. 2021

무해한 하루

매주 화요일은 휴무

오후 늦게 경주를 갔다. 가을엔 꼭, 무슨 일이 있어도 경주를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달큰한 색이 가득한 가을의 경주에서 걷는 일은 그 자체로 상쾌한 숨을 들이켜는 행위와 같다.


노을을 보기 위해 대릉원 입구 쪽으로 다급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담벼락에 앉은 고양이를 만났다. 느긋한 움직임이 어쩐지 가을을 짙게 하는 것 같다. 무해한 가을.


평일, 화요일이 분명하지만 주차난을 겪고 있는 차들을 볼 때면 경주는 매일이 주말 같다는 착각이 들게 했다. 빽빽하게 주차된 차들을 빠져나오자마자 작은 책방을 발견하고는 계획된 걸음인 듯이 당연하게 들어갔다. 근래에 동화책, 그림책을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는데 마침, 책방에 그림책이 한가득이다. 이걸 알고리즘이라고 해도 될까.


쇼핑에 있어서 '고민' 또는 '결정장애'라는 단어와 어울려 본 적이 없는 나는 찜 해 둔 것처럼 엽서와 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책방 사장님의 당황한 표정을 보니 예상을 빗나간 손님이 된 듯하다. 사장님이 얼떨떨 해 하시며 말하셨다. 너무 빨리 고른 거 아니냐고, 둘러보지도 않은 것 같다는 말은 끝을 흐리시면서 옅은 웃음으로 물음표를 붙이셨다.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불상이 그려진 엽서를 하나 챙겨 주시면서, 혹시 안 좋아하는지 물으셨다.


그럴 리가요. 경주라면 다 좋아요!


사장님은 기독교인이지만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좋아하는 것을 담는 마음의 크기와 깊이를 어렴풋이 느껴본다. 무해한 마음.


쉬는 날의 계획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기. 한 가지의 계획을 실천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걷기부터 시작하고 본다. 걷다 보면 생각나는 좋아하는 마음과 그곳으로 다다르는 걸음. 그 무해한 과정과 때마침의 노을. 하루가 무해함으로 그려졌다. 주장하지 않는 색감이 한대 어우러진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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