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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Jan 14. 2020

손톱

그러니 누구든 그럴땐 방해하면 안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손톱을 물어뜯었다. 초등학교 무렵일 것 같은데, 아빠가 나의 손을 향해 내리쳤던 때를 기억한다. 깜짝 놀라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다. 부끄러웠고,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빠 때문에 화가 났다. 이런 일은 이후로도 여러 번 반복되었다. 나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나도 나의 버릇을 고치려 애썼던 때가 있었다. 뭔가를 발라보기도 하고, 밴드를 친친 감아보기도 했다. 예쁘게 깍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밴드는 어느새 뜯겨져 있었고, 나는 손톱만 뜯는 것이 아니라 영역을 확장하기만 했다. 손톱을 뜯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지저분한 일이었다. 하지 말아야할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계속 했다. 그러면서 나는 계속 부끄러웠다. 뭔가 부족한 아이. 안되는 아이.

대학교를 입학하고 손톱 물어뜯기는 어찌된 일인지 자연스럽게 멈추었다. 나의 손톱은 벚꽃잎마냥 조각조각 작은 조각으로 붙어 있었다. 더 이상 물어뜯지는 않았지만, 그간 물어뜯긴 과거가 있는 것이다. 대학교 때도 긴장하던 순간이 있었고, 어찌할 바 몰랐던 때가 있었고, 고민하던 밤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의 손톱이 함께 하긴했지만, 길게 가지는 않았다.

요며칠 아파서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손톱을 다시 물어뜯게 되었다. 더 이상 뜯을 것도 없는 손톱인데 말이다. 살과 살의 경계가 벌어지고 붉은 빛이 드러난다. 나는 뭔가 부족한 아이, 안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어린 시절 내가 가졌던 두려움과 긴장과 불안은 지금 어디에 무엇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어디에 숨어있을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나에게 손톱은 이제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뜯고 싶을 때 뜯을 수 있고,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뭔가다. 손톱을 뜯었던 시간들은 가볍게 날아갔다. 이제 몸의 기억으로 남아 하고 싶을 때 한다. 하고 싶으면 하는 아이, 고민이 있을 때 고민하는 아이, 조금은 소심한 아이, 신중하고 싶은 아이가 지금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누구든 그럴 땐 방해하면 안되는 것이다. 알아서 조용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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