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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Feb 15. 2020

k언니에게



언니를 만나지가 언제인지요. 기억을 좀 해야지 알 것 같아요.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의미겠지요. 첫째가 1살, 2살 즈음이었을까요? 아직 걷지 못할 때 함께 만나 찍은 사진이 있어요. 그 이후로 몇 번 만나지는 못했지만, 언니는 포항에서 잘 살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도 사고요. 대구에서 살 때 집을 사지 않겠다는 저의 말에 놀란 토끼눈을 하고 저를 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어디 눈뿐이겠습니다. 얼굴 표정에서 황당한 느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니는 저에게 왜 집을 사지 않으려 하냐며 우선을 살면서 집을 사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이어서 했습니다. 언니는 답답한 마음에 하나라도 알려주고 싶은 생각도 있는 것 같았고, 정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저를 이상하게 보셨지요. 그때는 언니가 나를 왜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나 그게 더 이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충분히 그럴 상황이었는데 말이에요.

그때가 아련합니다. 그때 만났던 언니의 집 풍경과 느낌과 온도와 우리의 웃음과 아이들의 모습이 말입니다. 근데, 참 신기하게도 그때 언니의 집에 저와 아이만 간 게 아닐 텐데 저는 p와 b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왜 저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일까요? 그때는 결혼한 지 1,2년이 된 것 같은데 아이의 존재가 p와 b의 기억을 사라지게 만든 것일까요? 그때 아이는 온전히 저와 언니의 몫이었나 봅니다. p와 b가 함께가 아니라 분리되어 언니와 제가 나눌 뭔가가 있었나 봅니다. 언니와 저는 처음 만난 사이인데 p와 b 때문에 뭔가 관계를 맺어야 하는 혹은 이미 관계가 지어진 사람들이었지요. 그리고, 저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제 인생에 없던 언니가 생긴 것 같은 기분도 좋았습니다. 결혼하고 생기는 가족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은? 그렇게 우리는 아이를 매개로 p와 b를 매개로 만났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우리끼리 좋아서 만난 사이가 아니니 자연스럽게 사는 공간도 달라졌고, 만나지도 못했지요. 그 사이 p와 b는 가끔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음 주에도 만나러 언니네 집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니 언니 모습이 조금 그리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언니 얼굴도 떠오르고요.

언니는 얼굴이 희고 밝은 인상에 푸근하게 둥근 얼굴형이었습니다. 머리띠를 하고 앞머리를 시원하게 넘기고 있는 모습이 어울렸어요. 처음 만났을 때 언니는 아래 위로 붙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을까요?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그때 저는 언니를 가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에서 언니는 없었거든요. 언니가 필요했고, 언니와 이야기하고 싶었고, 언니와 사귀고 싶었을 텐데 제 아이 키우기에도 힘들어서 제가 그런지도 몰랐고, 언니를 길게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잘 살고 있어요. 언니도 잘 있지요? p와 b는 여전히 아주 가끔 만나 아주 늘 만나던 친구처럼 우정과 의리를 나누나 보던데, 저는 언니를 처음 만나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어요. p와는 헤어진 듯 모르는 듯 지내고 있어요. 언니와 처음 만나던 때는 하나인 듯 지냈다면 말이에요. 내 생각이 p생각인 줄 알았고, 나와 달라도 너무나도 쉽게 자연스럽게 p의 생각을 스펀지처럼 껴안던 때였어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모두 처음이라 나는 의기양양했고, 누구보다 보란 듯이 잘 키울 자신이 있었고 나만의 방법으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키우느라 바빴고, 신기했고, 이상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20년인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인데. 언니를 기억하니 그때의 제가 기억났습니다. 언니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편지를 쓰다 보니 저는 그때 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나 봐요. 처음 결혼이란 것을 하고 준비도 없이 준비란 것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아침 먹고 나서 점심 먹듯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낳은 아이가 커나가면서 얼마나 많은 후회와 자책과 혼란을 겪었는지요. 내가 어떻게 못하는 내가 처한 현실에 말이에요. 되돌릴 수 없는, 잘라낼 수 없는 필름. 딱 저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근데, 그 이전 보송보송 필터가 장착된 풍경 속에 언니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저도 있었고요. 그때 저는 충분히 행복해 보입니다.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행복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이루고 있었거든요. 언니나 저나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을 때 만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무늬의 행복을 맛보고 계시지요? 언니가 바라시던 집은 아주 일찍 사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주 큰 집에 b는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고 하고요. 아이들도 대학을 갔다고 했나? 이런 일상이 저절로 다가오는 게 아니니까 말이에요. p가 꺼낸 말 한마디에 언니에게 편지를 그때의 저에게 편지를 써봅니다.

다음 주 p가 만날 언니는 어떨까요? 이제 언니와 제가 만날 일이 있을까 싶어요. 처음에 언니에게 편지를 쓰면 전해야지 하다가 그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를 이어준 p와 b라는 끈을 저는 이제 잡고 있지 않아서요. 언제 어디서 우연히 만나면 그때 언니와 반갑게 웃을게요. 언니 건강하시고요. 그때 언니와 저를 만나 오늘 저의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고마워요. 언니.

2020년 2월 15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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