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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Jan 17. 2020

대청소

내 인생의 곰팡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주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물론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을 했다. 나는 걸레를 들고 먼지를 닦거나 물건을 정리하거나 버리거나 했다. 안방에 배치를 좀 바꾸고 오래된 먼지를 닦아냈다. 오래된 전선과 이름 모를 연결선들을 모두 버렸다. 아이의 철 지난 뜨게 인형을 마지막으로 버렸다. 매년 뭘 버리면서도 아까워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내 손으로 만든 것도 있고 누구에게 산 것도 있다. 쳐다보면 마음이 또 약해져 이것저것 싸안고 있을 것 같아 바로 버렸다. 먼지가 많아 걸레질을 하니 먼지 뭉치가 되었다. 걸레로 닦아내니 청소한 것보다 내 기분이 더 가벼워졌다.

지금 있는 집은 2013년 이사를 왔다. 한동네 살면서 이사를 많이 다녔다. 다양한 집과 이야기가 있다. 지난번 집에서는 거실 싱크대 물이 역류하면서 너무 괴로웠다. 주인집과 매번 통화하며 씨름하던 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호된 경험이 있어야지만 집을 마련하는 것인지 그 이후로 집을 매매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햇빛이 잘 드는 집이었으면 좋았을걸. 혼자 걸어 집으로 들어올 때나 밖에서 우리 집을 물끄러미 쳐다볼 때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한다. 얼마였으면 어디쯤의 집을 구할 수 있었을걸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채광이 좋은 집을 가면 또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렇거나 말거나 그랬으면 좋겠다.

내 삶에 곰팡이도 필요할까. 내가 필요한 곰팡이로 만들 수 있을까. 지금껏 이사를 다녔던 집에서 보고 만지고 익숙해졌을 곰팡이인데.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 떨어뜨려놓고 싶어도 떨어지지가 않는다. ‘살면서 뭐든 더 이상 참기 어려운 때가 있다고’ 그때가 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나는 곰팡이와 떨어질 수 있을까. 대청소를 하면서 지난 곰팡이가 생각난다. 이 집에 들어오면서도 지난 곰팡이를 떨고 내부 벽공사를 하고 들어왔었다. 그 곰팡이들은 잠잠할까. 다시 우리 집을 에워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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