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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Apr 19. 2020

성장



설거지를 하는데 맛단지샘이 “**이~ 참 많이 컸어, 쪼그맣더니, 요샌 밥도 잘 먹어”그러신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그렇죠”라고 대꾸를 했다. 나의 일터인 센터에 있으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본다. 매일매일 보니 언제 크나 싶다, 그런데 그렇게 일 년 이년 지나면 내 눈에도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몸만 크는 게 아니다. 일 학년 때 처음 들어왔을 때는 뜀뛰기도 잘 못했던 아이가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놀리며 놀 줄 아는 모습을 보았을 때, 친구와 싸웠을 때 대책 없이 큰 소리로 대성통곡하던 아이가 바락바락 대들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며 싸울 줄 아는 아이가 되었을 때, 혼자서 그네도 못 타던 아이가 사방치기며, 좀얼(좀비 얼음땡)이며 놀이의 신이 되었을 때, 그것도 모자라 동생들 사이에 생긴 다툼에서 교사 노릇을 하며 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참 많이 컸네”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대체로 고학년이 되면 그렇게 흐뭇하게 바라볼 일이 많이 생긴다. 이 공간에 있는 내가 좀 괜찮아 보이는 순간도 바로 그때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는 고학년이 되더라도 그러니까, 우리 센터에서 4년 이상 함께 생활했는데도 흐뭇함보다는 질문을 가지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지?’ ‘내가 뭘 잘못했지?’ ‘뭐가 문제였던 거지?’ 분명 우리는 잠자는 시간,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고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먹고, 놀고, 컸다.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더라도 덜 모난 모습이어야 할 텐데, 아이는 더 각져있고, 삐져나가려고 할 때가 있었다. 처음 그런 일을 맞닥뜨렸을 때는 아이 개인의 일로 치부하고 싶었고, 이후에 종종 그런 일을 만날 때는 두려웠다. 내가 뭔가를 할 힘을 가져도 되는 건가 겁이 났고, 내가 이 공간에 있는 것이 맞을까 걱정되었다. 당황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 공간에 있다. 시간이 갈수록 잘 모르는 이 공간에 있다.

어느 핸가 졸업했던 아이도 그랬었다. 그 해도 아이가 졸업할 무렵 계속 과거를 되짚어갔다. 언제 내가 무엇을 했는지,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그 아이와 우리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오늘 내가 불편한 부분은 무엇인지, 우리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때도 답을 찾지 못했다. 오늘도 그랬다. 5, 6학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모습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일학년 때부터 나와 함께 있었던 아이들인데 그동안 아이들은 이 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을까 생각하니 허무하고 힘이 빠졌다. 아. 결국은 우리가 뭔가를 잘못한 건가 싶었다. 이 아이들은 왜 우리를 이렇게 대할까. 이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이 아이들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내가 생각하는 성장은 무엇인가. 내가 모르고 있는 아이들의 성장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성장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아이들이 평화로울 수 있는 ‘스스로의 뭔가’를 발견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혼자든 같이든 고독하더라도 ‘자기 것’이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커나가면서 ‘자기 것’을 발견하고 뺏기지 않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적어도 남의 것을 뺏거나, 비하하거나, 멸시하거나, 조롱하기보다 ‘나의 것’을 울타리로 가지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어린이에게 이것은 불가한 것일까. 이건 내가 잘못 생각하는 성장일까. 내가 생각하는 성장은 그런 것이다. ‘자기 것’ 있는 아이, 아직 볼품없어서 다른 사람 앞에서 꺼내기는 힘들어도 ‘자기 것’이 있는 아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데 남이 보면 뭐라 할까 아닌 척 하지만 알고 보면 ‘자기 것’에 대한 자부심과 당당함이 큰 아이, 누가 보면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심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것’으로 잠깐이라도 즐거울 수 있는 아이, 아직은 울퉁불퉁 싸움거리 투성이지만 누구 앞에서든 ‘자기 것’을 내세우고 싸우는 아이, 아주 다양한 ‘자기 것’을 가진 아이들이었으면 좋겠다. 이 공간에서 이러한 성장을 기대하는 건 나의 편견일까, 오만일까.

잠시 생각으로 결론이 나올 것도 아니다. 깊이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부분이다. 코로나 19로 교사들이 함께 회의할 시간도 확보되기 어렵다. 학기가 시작하면 함께 공부도 하려고 했는데, 공부는커녕 기본 근무만으로도 벅찬 하루하루다. 하루하루는 저절로 굴러오고 고민과 시름은 눈덩이처럼 커지는 기분이다. 유독 오늘이라 그럴까. 그렇다고 하고 싶다. 오늘 유난히 더 그런 거라고 오늘이 지나면 또 나아질 거라고 하고 싶다. 오늘 내가 본 아이들은 그동안 어떤 성장을 해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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