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붉은낙타 Apr 19. 2020

바나나 머핀



작년 언제였을까?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만들어 먹고 싶었다. 나는 재주가 없었고 누가 만들어주면 먹고 싶었다.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기도 했다. 인터넷엔 여러 레시피가 있었지만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고, 내가 필요한 것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번 ‘같이 모여서 빵 만들어 먹고, 차 마시는 모임 해보면 어때? 그런 거 있으면 해보고 싶네.’ 싶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랐는데 (이미 많은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 요리를 좋아하는)어느 지인이 한마디를 던졌다. ‘그냥 먹고 싶은 거 하나 해보면 돼요. 쉬워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요즘엔 레시피가 워낙 많아서. 사람마다 다 달라서요. 만들면서 맞춰나가면 될 거예요.’ 그땐, ‘에이~ 그냥 좀 가르쳐주지. 시간이 안 나나’ 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일 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나는 요즘 빵을 만들어 먹고 있다.

집에 있던 유리로 된 원형 오븐은 더러워지기도 했고, 한번 뚜껑을 떨어뜨려 쓰기가 힘들어졌었다. 버리고 나서는 오븐을 살까? 무엇으로 살까? 고민을 한참 했었다. 오븐으로 해야 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기에 사야겠다고 결정하고는 이번에는 좀 좋은 것으로 사야지 했다. 지난번에는 동네 카페에서 벼룩으로 내놓은걸 2만 원을 주고 사서 잘 썼다. 이번에는 이것저것 좋다는 오븐들을 좀 둘러봤다. 집이 좁아서 오븐을 괜찮은 것으로 들이려면 자리 확보도 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뭘 많이 만들어 먹을까? 그것도 관건이었다. 마음이 주욱 한결같이 못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고민 고민하다 결국엔 중고나라에서 무난한 컨벡스 오븐을 5만 원 정도에 구입했다.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돈을 더 들였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나름 뿌듯했다. 웬만한 베이킹은 다할 수 있으니 나에겐 이것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 동안 오븐 없이 살다가 또띠아에 피자도 종종 구워 먹고, 야채도 구워먹고, 빵도 구웠다. 좋아하는 스콘도 여러 버전으로 도전하고 지지난주부터는 바나나 머핀을 계속 굽고 있다. 쉽고, 맛있으니 이보다 가성비가 좋을 수가 없다. 몇 번 하면서 할 때마다 레시피를 조금 다르게 했다. 맛이 달랐다. 바나나를 많이 으깨지 않고 덩어리째 넣는 게 나는 더 좋았다. 굽기 전에 바나나를 잘라서 위에도 올리고, 호두도 함께 넣으니 고소하고 좋다. 처음에는 버터를 넣은 레시피였는데, 두 번째에는 그냥 기름을 사용했다. 오늘은 통밀가루를 썼다. 한 번에 모두 바꾸면 이상할까 싶어 절반만 통밀로 썼다. 결과는 나의 입맛엔 이게 훨씬 좋았다. 통밀의 구수함이 바나나와 잘 어울리고 식감도 좋았다. 몇 번의 과정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맛을 찾아가고 있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쓰는’ 것이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인 것처럼, 하고 싶은 것과 한다는 것의 차이가 이런 건가? 싶다. 하고 싶은 욕구가 내 생활이 되기까지. 일 년여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여러 일이 있었다. 누가 가르쳐줘서 했으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보려고 했을까?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빵을 만들어 먹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그렇게 해서 먹는 음식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쉽고 만족할 수 있는 <바나나 머핀> 같은 메뉴를 만난 건 얼마나 행운인가.


왜, 언제 나는 이걸 만들려고 했었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오늘 통밀로 만든 바나나 머핀의 구수함과 달콤함에 만족하면서 작년에 그 지인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냥 하면 돼요, 그렇게까지 배울 건 아니에요.’했던. ‘그래서 그랬구나, 그럴만했네’ 정말 하고 싶은 사람이면 그냥 할 수 있을 거라고 그이는 생각했을 거다. 먼저 해 본 사람으로서 알고 있었던 거겠지. 엄청난 어떤 베이킹을 할 것도 아니고 할 생각도 없지만. 내가 필요한 뭔가를 할 수 있어 즐겁다. 게다가 그게 먹는 거니 금상첨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