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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Apr 19. 2020

몸의 말들- 발과 튼살

‘영노자’- 영혼의 노숙자 청취 후




아침 걷기를 할 때 종종 팟캐스트를 듣는다. 요즘은 ‘영혼의 노숙자’를 듣고 있다. 재미있다. 가끔 의미 있는 게스트가 와서 함께 얘기할 때도 좋지만, 진행자인 멧님 혼자서의 수다도 좋고, 친구들인 뿌수미님, 굉여님과의 수다도 좋다. 어제 아침에는 <몸의 말들>의 저자와 ‘피우다’의 대표를 모시고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을 나이에 나는 내 몸에 대해 긍정적이지 못했다. 아닌가? 일부 긍정적이지 못하다고 해야 맞을까. 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야기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가장 하찮은 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발은 늘 나의 콤플렉스 같았다. 발은 그리 드러날 일이 없어 콤플렉스이지만 매번 도전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발볼이 많이 넓다. 그리고 다섯 발가락의 길이가 비슷하다. 그래서 발가락이 볼이 넓은 직사각형 모양이라고 할까? 가만히 보면 조금 웃기게도 생겼다. 발가락 길이는 짧은데 다섯 발가락이 길이가 비슷해서 짧은 발에 짧은 발가락이 촘촘히 매달린 꼴이다. 빼곡히 매달려 있으니 얼마나 비좁을까. 그래서 발볼은 더 넓어진 것일까. 여하튼 갸름하지 않고 뭉특한 내 발이 부끄러웠고 싫었다. 다른 사람 앞에 내보이기도 싫었다. 그래서, 맨발로 잘 다니지도 않았던 것 같다. 구두를 신었던 적도 거의 없었고 거의 운동화류를 신었다. 발에 그게 더 편하기도 했다. 발 볼이 넓으니 구두류는 발이 더 힘들었다. 샌들이나 예쁜 구두가 눈에 많이 들어오던 나이에 그것에 맞지 않는 내 발이 싫었다. 왜 내 발에 맞는 구두는 없는 것일까. 요즘에서야 내 발에 맞는 운동화, 구두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 잘 만난 구두와 운동화가 참 예쁘다. 그때는 내 몸에 맞는 것을 찾아야 하고 왜 없냐고 소리 낼 줄 몰랐다. 그러기보다 다른 사람과 비슷하지 않은 내 발이 부끄러웠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처음 몸이 튼 것을 발견했을 때도 기억난다. 몸에 붉은 선이 보였을 때 그게 뭔가 놀랐다. 몸이 튼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정보가 없어서, 몰라서, 무지해서 내 몸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뒤늦게라도 크림을 사서 발랐다. 크림은 또 얼마나 비쌌던가. 열심히 바르지 않았던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살이 갑자기 찌거나 하면 살이 튼다. 붉은 선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흰 선이 된다. 살의 체질에 따라 살이 트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이것은 크림을 바른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다. 완화되는 부분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튼살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다. 피부는 매끈해야 하고 점이 없어야 하고 기미가 없어야 한다. 그런 피부를 가진 사람을 귀티 난다고도 하고 아름답다, 예쁘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최근 한국 여성민우회가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는 1주일 살아보기’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회학자 오찬호 씨는 “자신과 타인의 외모에 대해 노코멘트하는 1주일 살아보기 한번 해보세요. 실제로 정말 힘들 거예요. 아마 그동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주제로 대화해 왔는가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될 정도로요”라고 말하였다.

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외모 강박에서 탈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매일 특정 외모를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유포하는 미디어, 산업에 둘러싸인 채, 인식이 변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한국일보, 18.6.16) 나 또한 한국사회 속에서 나의 외모를 결정짓는 많은 사회적 말들에 동의하고 동의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규제하고 관리하고자 하고 자책하며 살아왔다. 임신의 과정을 지나며 내가 나의 튼살을 처음 보았을 때 임신한 나의 몸을 감당하기 힘든 나의 살들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 살이 트도록 몰랐던 나를 자책하고 비싼 돈을 들여 크림을 사고 뒤늦게 크림을 바르며 나의 늦은 노력과 이미 터버린 살들을 매번 보면 느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제 뭔가 부실한 상품이 된 듯한 느낌?, 아름다운 몸이 되기는 힘든 것?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크림을 살 때 들이 돈과 그것을 열심히 바르며 들였던 정성과 나의 자책이 아깝고, 안타깝고, 안쓰럽다.

이후 다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튼살은 겹겹이 쌓여갔다. 그러면서 이것이 관리를 한다고 생기지 않고,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몸에 대해 가장 잘못 알려진 것이 우리는 우리의 몸이 나의 노력에 의해 바뀔 수 있는 유일한 것처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가 요구하는 몸이 아닌 자에게는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자’ ‘관리하지 않는 자’ ‘게으른 자’라는 인식이 깔린다. 왜 나 아닌 누구의 몸에 대해 우리는 이토록 관여하고 간섭하고 판단하고 심판하려 드는가. 몸은 나의 노력에 의해 바뀔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지만 노력으로 바뀔 수 없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몸은 유기체다. 나는 누구의 몸과도 같지 않다. 나의 몸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유기체는 누구의 몸과도 다른 것이다. 누구의 예가 나의 것이 될 수 없고, 나의 의지 또한 누가 판단할 것이 아니다.



** 제목의 바탕 사진은 김중석님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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