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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Apr 19. 2020

이론은 셋팅해도 감각은 셋팅하기 어렵다

- 함께 살기



“이론은 셋팅해도, 감각은 셋팅하기 어렵다.” 오늘 나의 기억에 짙게 남은 말이다. 아침에 걷기를 하며 팟캐스트를 듣다가 은유 샘이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청중은 남성들과 살아가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이었다. 공대생이고 졸업을 하고도 남성이 대부분인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남성들과 함께 생활하기가 아주 괴롭다는 것이다. 남성들의 빻는 행동과 사고에 우울하다는 그분은 남성들과 좀 더 조화롭게 살려면 어쩌면 좋으냐고 질문을 하였다.

은유 샘의 답은 좀 싱거웠다. 싱겁다 못해 좀 재미도 없었다. 그저 당신의 남편은 그나마 좀 나은 사람이고 아직 아이는 부모의 말을 잘 따라준다 정도였다. 누가 들으면 ‘그래, 당신은 그나마 낫겠어요’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은유샘의 답변을 보충한 누군가의 말 중에 은유 샘이 글에 썼다는 말을 예를 들어 말했는데 그게 나의 뇌리에 남았던 것이다. 은유 샘도 페미니즘에 눈을 뜨고 자신의 행동이 돌아보이고,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한 꺼풀씩 떨쳐버리려 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전히 이불 킥 중이라는 거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적용하려고 하는데 이론적으로는 가르치며 다시 셋팅하는게 가능한데, 감각적인 셋팅은 삶에서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본인은 3일이 지나도록 걸려있는 빨래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한데, 남편은 그런 감각이 전혀 없다는 것, 그래서, 남편에게 한소리를 하면(물론, 그 한소리는 부드럽게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냥 알려주면 되지 왜 화를 내냐’는 말이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언제 남자들은 주도적인 가사노동과 몸의 감각을 익힐 수 있단 말인가. ‘저도 안되더라고요’로 마쳐지는 은유 샘의 답변이 아주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 때려치웠어요!’라는 강경한 답변을 듣고 싶었을까?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은유 샘이 나는 그렇게 답답하고 아쉬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침 걷기를 하면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했다. 나는 퇴근을 해서 감자 샐러드를 해서 모닝빵에 넣어 먹고 싶었다. 그런데 들어와 보니 싱크대에 설거지를 하지 않은 그릇들이 산더미인 것이다. ‘설거지 좀 그때그때 하라고 했더니, 그게 안되면 다음 음식 하기 전까지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건 뭐 조율도 안되니 같이 살겠냐’며 한소리를 했다. 민망한 k는 소파에서 일어나 뭐 할 거냐며 음식 할 일 없는 줄 알고 나중에 하려고 했다는 말을 덧붙인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23년 누누이 얘기해도 그렇게 안 고쳐지고, 말대로 안 되면 중간이라도 해야지.’라며 라는 다시 양념을 끼얹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은유 샘이 한 말을 덧붙였다. ‘은유 샘도 이론은 셋팅해도 감각은 세팅 안된다더니 그놈의 감각은 도대체 어떤 거길래. 참말로 같이 살기 어렵다’ 같이 살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내가 같이 살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늘 따로 살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나를 보는데 오늘 문득 같이 살려고 노력하는 나를 본 것이다.

참. 그 기분을 뭐라고 말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즐거움 정도도 아니고 이건 그저 실용적인 조율이고 합리적인 선택의 방향이다. 그냥 서로 좀 감정 없이, 그 정도는 협의가 되면 좋겠다. 감정 없이도. 이때 나의 감정 없이 도는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누구는 정 때문에 의리 때문에 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그런 거 말고 그냥 감정 없이도, 정 없이도, 의리 없이도, 그냥저냥 함께 살기 위해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조율 가능한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었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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