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는 <작은 아씨들>을 보고 ‘그레타 거윅’ 감독에 꽂혀서 한달음에 본 영화이다. 신기하게도 영화는 내가 본 영화였다. 그러나 더 신기한 건 처음 보았을 때와 다시 보았을 때의 느낌이 아주 달랐다는 것이다.
레이디 버드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크리스틴이라는 (구린) 이름 대신 자기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정하고 영화의 시작부터 그렇게 불러달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고2, 3 정도일까? 레이디 버드는 공립학교를 다니며 (큰 폭행 사건을 목격한) 오빠와는 달리 부모님의 걱정으로 비싼 학비를 내며 사립학교인 가톨릭 고등학교를 다닌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연극부도 하며 대니와 카일이라는 남자 친구도 사귀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성장하는 레이디버드.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는 온전히 레이디버드의 엄마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보았다. 철저히 엄마의 입장에서 엄마의 눈으로 본 영화였다. 그래서일까 레이디버드의 중심에서는 영화를 느끼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청소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 내지 성장하는 사춘기 자녀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영화였다.
이번에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전혀 엄마의 입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영화를 보았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던 것처럼 영화의 장면 장면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과 오버랩되기는 했지만, 내가 보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레이디 버드의 모습이 영화 보는 내내 눈에 들어왔다. 레이디 버드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레이디 버드의 막무가내 소리 지르는 모습, 엄마와 지긋하게 싸우는 모습, 자신의 일에는 튕겨나가는 용수철 마냥 순간순간 단 한 번도 수그러지지 않는 모습, 기를 쓰고 새크라멘토를 벗어나려는 투지, 남자를 꼬시려는 의지, 파티에서 예뻐 보이고 싶은 모습, 자기 생각에 숨김이 없는 모습, 자기 생각에 부끄러움이 없는 용기, 친구를 배신하는(버리는?) 자신감,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는 집념, 하고 싶은 목표가 뚜렷한 삶, 벗어나고 싶은 동네, 가족, 무엇보다 친구, 가족에게 솔직함, 그래서 영화 내내 싸우는 모습,
내 몸에 생채기가 나던 어떻게 되던 뒷일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감정과 뜻과 욕망에 충실한 투지의 레이디버드가 부러웠다. 그렇게 기를 쓰고 자신의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벗어나려던 모습도 부러웠다. 나는 이미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기에는 나는 이미 반사적으로 신경 쓰고 알아보고 고민하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의 앞길 외에는 보이지 않는 경주마처럼 옆을 볼 수 없는 레이디버드. 그래서, 나의 욕망과 나의 감정에 가장 솔직한 레이디버드. 그에게는 레이디버드를 신경 쓰고, 살피는 엄마와 아빠와 오빠와 오빠의 애인, 줄리가 있다. 늘 싸우는 가족이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레이디버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실제 나에게 일어난 사건들은 아니지만 영화의 핵심인 고향, 유년시절, 그리고 떠남의 정서는 온전히 나의 것”(그레타 거윅 인터뷰 중)
“레이디버드”가 대학에 들어간 후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영화가 끝난다. 왜 뉴욕인가?
영화의 엔딩이 진짜 끝일 수 없고 영화의 시작이 진짜 시작점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는 언제나 뒤를 되돌아보고 명백히 다 끝난 것 같은 일도 자꾸 정리하면서 산다. 비행기는 이륙한다. 이런 엔딩은 거짓말이며,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으로도 빵점이다. 비행기에 올랐다고 해서 간단하게 과거와 결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중략) 우리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 열린 길과 닫힌 길이 공존하고 있다. 앞으로 내딛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이니까. 그저 그동안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앞에 펼쳐진 새로운 삶에 한 발짝 내딛는 것뿐!
한 사람은 옳고, 다른 한 명은 틀린 그런 다이내믹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다. 안타까울 만큼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두 여인을 그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그 사랑을 이룰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나에게는 이런 게 가장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이다. 어머니와 딸 사이의 로맨스가 가장 격정적인 로맨스 중 하나인 것 같다.
인생에 있어서의 가장 격정적인 로맨스인 엄마와 딸의 로맨스를 그렸다는 감독의 말은 절절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누구의 입장에서도 아닌 각자의 입장에서 말을 하고 있어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감정으로 영화를 누릴 수 있다. 몇 번을 본다면 그 몇 번은 다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가장 불안한 시절, 그러나 아름답고 뜨거운 시절, 그 태양을 통과하고 다시 출발점에 선 레이디버드 ‘열린 길과 닫힌 길의 공존’이라는 그레타 거윅의 말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 열린 길만을 그렸다면 새로운 시작을 보지 못하리라. 열린 길과 닫힌 길이 공존하는 인생의 기로는 누구나 설 수 있는 곳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기로 아닐까. <레이디 버드>가 선택한 뉴욕의 응급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