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은 입니다>를 읽고.
“여자가 있으면 분위기가 좋아져. 지사님이 부드러워져.”
그리고 그렇게 분위기를 풀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내 역할은 충분하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도 잘 몰랐다. 불쾌했지만, 그 말이 성희롱이며 어떻게 부당한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김지은입니다>p122
나도 그랬다. 40년도 더 지난 그날도 그 주산학원 원장이 나를 칭찬하는 손길이라 생각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그저 있을 수 있는 어떤 일이라 생각했다. 혹은 오랜 기간 기억에도 없었다. 그 일이 성추행이며 어른과 아이 사이에 위계를 빌미로 저지른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조차 나는 인식하지 못했다.
울산 초등교사의 일을 접하면서도 나의 초등학교 때 늘 선생님의 자리에서 무릎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선생님의 귀여움을 받는 아이가 되고 싶기도 했다. 선생님의 손길을 받고, 무릎에 앉을 수 있는. 울산 초등교사의 일이 놀랍지 않다는 말과 함께 내가 목격한 일상적인 교사의 성추행 모습을 이야기했더니 k는 “나는 그런 기억 없어,”라고 했다. 맞다.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일 수 있다. 부여받고, 요구받고, 주의와 긴장을 하는 사람에게만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젠더에 따라 생애주기에 따른 기억도 다른 법이다. 누구는 평생을 겪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갈등을 누구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지 않는가. 우리는 그 기억을 서로 말할 필요가 있다. 들을 이유가 있다.
간만에 얻은 연차를 책을 읽으며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책을 읽을 계획 따위는 나에게 없었다. 그저 따뜻한 밥을 먹으며 우연히 책장을 넘겼을 뿐인데, 그래서 첫 줄을 읽었을 뿐인데, 멈출 수가 없었다.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올랐다 내렸다, 눈물이 차올랐다 내렸다, 김지은의 마음을 따라 단숨에 읽어 내렸다.
극단 성폭력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윤택이 오버랩되었다. 그의 일상과 연극촌에서의 말, 행동을 가장 옆에서 기록한 이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권력과 위계를 자신의 몸의 일부처럼 사용하던 사람, 그동안 우리는 누구도 그에게 NO하지 못(안)했을 것이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말하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각자가 가진 ‘기억과 목격’을 말이다. 나 또한 권력과 위계의 옷을 입고자 욕망하고 이미 한 자락 걸치고 인식하지 못한 위계를 행사했을지도 모른다.
‘위력의 무서운 점은 위협적인 말을 듣지 않아도, 스스로 몸이 굽혀진다는 것이다.’-같은 책 p174 (네가 가만히 있길래, 싫다고 했어도 도망가지는 않길래, 싫다고 했어도 나를 물어뜯지는 않길래, 아니에요 했지만, 계속 근무하길래) “나는 몰랐어”라고 한다고 해서 네가 한 일이에 면죄부가 생기거나 폭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히 이 대목을 쓰는데 욕이 절로 나온다. 나름 아주 정제하고 흥분을 가라앉히며 글로 적어나가고 있다.
“우리 모두가 김지은이다”- 같은 책 p202
벌새의 김보라 감독이 쓴 ‘세상의 모든 은희들에게’ 편지를 읽고 가슴 깊은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이름은 지은이다. ‘지은이가 지은이에게’ 목소리를 전할 차례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는 용기를 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내가 김지은을 안다는 것이고, 그런 나는 권김현영 선생님 말대로 ‘그 전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함께 나누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김지은입니다>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무기력, 폐쇄된 조직, 계약직, 평판, 피해자다움, 일상적 폭력, 사과, 권력(위력), 품평(외모품평), 눈빛, 눈치, 심기, 기침소리, 정조, 조직, 공포, 생계, 생존, 불륜, 상명하복, 연대, 수치, 신경쇠약, 위로, 대화, 그리고, 글’ 김지은이 말하는 이 단어들에 대해서 자세히 나누고 싶다. 지나간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나의 일상과 생계와 생존과 관계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