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인 이민자를 태운 갤릭호가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했다. 그중 배에서 내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신체검사에서 통과한 86명(남자 48명, 여자 16명, 어린이 22명)뿐이었다.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러 온 그들은 근대적 개념의 첫 이민자이자 대한제국 정부가 최초로 인정한 공식 이민자들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이민선에 올랐던 이민자들은 세상을 태울 듯한 뙤약볕과 칼날처럼 날카로운 잎을 가진 사탕수수, 채찍을 휘두르는 냉혹한 관리자 밑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했다. 일본의 제지로 이민 금지령이 내려진 1905년까지 하와이로 간 이민자들은 7200명이었다.
대다수였던 독신 남성 노동자들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사진결혼을 택했다. 조국으로 자기 사진을 보내 배우자를 구하는 것이다. 1910년부터 ‘동양인 배척 법안’이 통과된 1924년까지 이어진 사진결혼 과정에서 신랑감들은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을 보내거나 직업 재산 상태 등을 속이기 일쑤였다. 중매쟁이들도 하와이나 신랑감에 대한 허위광고를 서슴지 않았다. (중략) 여자들은 장에 가는 것조차 어려웠던 때 어떻게 머나먼 곳으로 떠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무엇이 사진 한 장에 자기 운명을 걸게 했던 걸까.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와이에 도착해 만난 남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낯선 곳에서의 삶은 또 어땠을까. 끝없이 솟아나는 질문에 사진 속 신부들은 버들과 홍주, 그리고 송화로 살아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알로하, 나의 엄마들> p397 작가의 말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아니라 묻혀있던 비밀상자를 깊은 땅속에서 꺼내 본 것 마냥 떨렸다. 책을 읽는 내내 버들의 삶이 어떻게 될까 봐 마음 조렸고, 양력의 해를 기억하며 역사책 속의 한 조각의 사실을 유추해보려 했다. 그 이유는 한 가지였다. 소설 속 인물들의 행방을 한시라도 빨리 알고 싶었다. 그래야 내 걱정이 조려지는 마음이 나아질 테니까. 그만큼 한 몸이 되어 본 소설이다. 소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살아있는 생물 같다. 나의 머릿속에서 다시 그려져 움직이니까 말이다. 내가 소설을 읽고 그려낸 카후쿠, 호놀룰루, 와히아와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열여덟 살 버들이 이야기를 시작해서 마흔한 살인데 예순 살은 돼 보이는 버들까지 나온다. ‘누가 내한테도 이쁘고 향기 나는 꽃목걸이 조금 걸어줬으면 싶었다.’던 버들은 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친다. 버들의 이야기만 따라가던게 익숙해서 마지막 펄의 목소리는 낯설었다. 그 낯설음은 곧 소설적 재미와 풍성함으로 이어져 소설의 마지막이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기 전 이길보라 감독이 ‘두번 읽으세요, 세 번 읽으세요’라는 추천글을 보고 당장 빌렸는데, 읽고 난 지금 그 말에 나의 여운이 얹어져 더 큰 파도가 된다. 아직까지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정리되지 않은 말만 널어놓고 있다. 100년도 넘은 조선과 지구 반대편 하와이의 어느 누군가의 삶이 나에게 하는 말인듯해서 말이다. 글의 마지막 펄의 마음 속 읖조림이 마음에 남는다. ‘엄마는 가난해서 팔려오거나 일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처럼 꿈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쯤이 아니라 조선의 버들의 꿈과 나의 꿈이 크게 다르지 않음이 나의 마음을 흐트러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