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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Oct 01. 2020

김하나 <말하기를 말하기>

필사 및 단상


1.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되자’
여행의 시작에서 있었던 이 경험은 나에게 열린 마음의 중요성을 멋지게 일깨워주었다. 내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나는 이 친절한 아저씨를 불편하고 찜찜하게만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여행 내내 반복된 경험이었다. 내가 먼저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매너를 갖추어 말을 걸면 상대 또한 잠시나마 자신의 세계를 내게 보여주었다. (중략)

여기서 세계를 파악하는 두 태도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즉 세계를 화분들의 집합으로 파악하느냐, 아니면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이해하느냐. 좁은 화분을 벗어나 울창한 숲 속으로 나아가려면 우선 내 마음이라는 화분부터 깨버려야 할 것이다.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된다는 건 내게 그런 의미였다. (중략)

화분에서 숲으로 나아간 이 경험은 나의 내면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감하나 <말하기을 말하기>

2. 글을 읽으면서 초입부의 이 글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말을 먼저 거는 사람이 된 거지? 했다. 나는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이다. 말을 걸지 않기도 않거니와 할 말을 찾기도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 글에 흥미가 갔다. 이 글을 다 읽으면 나도 좀 뭔가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급하게 내리읽었다. 그러나 책 어느 구석에도 ‘이거구나’할 건 없었다. 타인의 경험과 인식을 내 것으로 삼으려 했던 내가 잘못한 거겠지. 뭘 찾겠다고 한 건가. 그러면서 작가와 내가 참 다른 사람처럼 여겨졌다. 작가는 작가라서, 특별해서.

혼자 여행을 가더라도 나는 어디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말을 걸까 봐 피해 다니면 다녔지. 그런데 그런 나는 왜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되자’는 작가에게 이끌렸을까. 나의 모습이 화분 같아 보여서? 거대한 숲의 끝이 보일락말락해서? 내 모습이 지겨워서? 나도 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왜 변하고 싶은가?

스스로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보자면 이런 내가 참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그게 요즘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의 것을 버리고 싶다기보다는 웬만큼 나를 헤치지 않는다면 나를 시험해봐야 할 텐데 그런 것에 시간을 써야 할 텐데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겠지. 그동안 그러지 않았으니. 그래서 이 글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거겠지.


p.s. 이 글을 쓰고도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되자’는 나의 머리 속에서 계속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것으로인한 변화였을까. 한참 잠자고 있던 페북 글쓰기를 시작했다. sns에서의 먼저 말걸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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