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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Oct 01. 2020

김신회 <심심과 열심>

필사 및 단상



1.  나의 경우,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마지막 문단을 여러 번 읽어 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네 진심이냐?’ 그저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서 쓴 건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쓴 문장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어떠한 흐름을 타다 보니 여기까지 오고 말았는지 여러 번 눈으로, 입으로 읽어 본다. 그러는 동안 알게 된다. ‘아, 이건 내가 하려던 말이 아닌데’ 그때부터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다시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어처럼.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끝 문장 쓰는 법은 다음과 같다.
1. 뭔가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
2. 교훈이 없어도 된다.
3. 이야기의 결론을 꼭 내지 않아도 된다.
4. 다짐과 희망사항에 대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 안 물어봤다!

글쓰기는 인간관계와 비슷하다. 만날 때마다 교훈적인 이야기만 하고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삶이란 얼마나 신비롭고 위대한지 찬양하는 사람하고는 1년에 1번 만나도 충분히 부대낀다. 최근에 있었던 일들, 갑자기 든 생각, 요새 나를 짜증 나게 하는 사람이나 열 받게 만든 사건들을 두서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과는 매일 만나도 할 이야기가 생긴다. 인간관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교훈이나 깨달음이 아닌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다. 그 쓸모없음이 바로 쓸모인 것이다. -김신회 <심심과 열심>

2. 의도하지 않아도 나의 글의 마지막은 다짐하고, 정의하고 그럴싸한 추상적인 말로 끝이 맺어진다. 삶의 언저리 내내 교훈적인 가르침이 필요해서였을까. 그러한 말에 익숙해져였을까. 누군가에게 조언하고 충고하는 것이 편했을까. 그래서 나 자신에게도 결론은 가르치고 싶은 것이었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본다. <심심과 열심>은 작가를 지망하든 아니든 오늘 글을 쓰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주옥같은 글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위에 인용한 글이 나에게는 가장 먼저 다가왔다. 유독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서 웃음이 나올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리고 지금에라도 알게 된 게 다행이구나 싶었다. 알고 못해서 부끄러운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또 천지차이 아닌가. 안다고 해서 오늘 당장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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