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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Feb 07. 2021

가해자들

소설 <가해자들>을 읽고



거실 창문이 방충망과 창문으로 이중으로 닫혀 있으면 화가 난다. 그걸 볼 때마다 다시 문을 열어 방충망을 열고 창문만으로 다시 닫는다. 맑은 창이 아닌 방충망이 거실창에 비치는 게 싫다. 잠을 자다 중간에 깨면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중간에 나를 깨게 만드는 소음에 화가 난다. 큰소리에만 깨는 게 아니다. 누군가 일어나 거실을 걸어 화장실에 가는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부엌 냉장고가 열리는 소리, 컵이나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잠자는 나를 깨어나게 만든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타 소리, 티브이 소리,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 집에서 나는 (이런 류의) 소리들이 싫다. 나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나를 피곤하게 하고 화나게 한다. 베란다 쪽을 통하는 문이 열려있으면 화가 난다. 누가 또 열어둔 거지? 열어두면 바람이 들어오는 걸 알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아.... 한숨을 쉬며 문을 닫는다. 잠자는 방의 요가 삐뚤어져 있으면 불편하다. 아... 이게 왜 또 삐뚤어져있지 생각하며 바로 잡는다. 내 자리가 아닌 다른 사람 자리도 삐뚤어져 있으면 그렇다. 집에 있는 물건의 위치에 대해서 누가 물으면 한숨이 난다. 화가 난다. 아직도 그걸 모르나 싶다. 그때그때마다 대꾸해서 알려줘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난다.

소설 <가해자들>을 읽고 처음에는 소음과 관련해 나를 화나게 하는 부분을 떠올라 적어보다가 소음은 아니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는 나의 생활 부분 부분을 떠올려보았다. 나를 화나게 하는 부분인데,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 이런 생활 자극은 언제부터였을까?

소음과 요설을 지나 결국 자신이 이르고자 했던 것은 침묵이었다고 김수영은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소음은 처음부터 “외로움이 만들어낸 실체도 없는 소리”였다는 점에서, 그 타인의 무분별한 진동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욕망이 실은 타인이 없는 외로운 진공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목표는 애초에 모순된 방향을 향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천장과 바닥과 벽을 타인과 공유하고 사는”존재들의 공명을 그리고 있는 이 격자 구조의 소설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료한 구획선을 흩트려놓을 뿐만 아니라, 각자의 시공간에 맞닿고 있는 타인의 체적과 함께 진동할 수밖에 없는 나와 그들의 얇디얇은 경계선에 대해서도 둔중한 질문을 남긴다.- <가해자들> p149

평론가는 ‘타인의 무분별한 진동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욕망이 실은 타인이 없는 외로운 진공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공명하는 경계 없음의 현실. 이해와 동의는 어렵다. 외로운 진공은 무엇일까? 타인이 없는 외로운 진공은 오히려 ‘나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진입한(의존한)’ 타인으로 인한 것은 아닐까. 소설 속 1111호 그녀는 ‘뭐든지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었고 무던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할머니만이 못마땅한 얼굴로 ‘나는 너 안 믿는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그래도 그녀는 에이, 어머니, 왜 그러셔요, 하고 웃어넘겼다 ‘

1111호 그녀가 자신의 경계를 만들지 못했을까. 아니면 그녀의 경계를 가족들이 무시하고 진입했을까. 가해의 시초를 찾기 위한 추적은 어떻게 될까?(실패할 것이다 라고 적었다가 다시 어떻게 될까로 고쳐본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만들고 의존하는 경계 없음. 그 경계 없음이 빚어낸 서로를 향한 가해.

나는 가끔 열려있는 문과 들리는 소음과 방충망과 함께 닫혀있는 창문을 보며 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었다. 타인의 가해로 나에게 와 닿는 것이다. 그 순간 나 또한 누군가에게 똑같은 가해를 한다. 말이든, 감정이든, 행동이든. 화내는 말을 하며 문을 쾅 닫을 때 이 행동 또한 타인에게 가해가 될 것이다. 결국 소음이 빚어낸 것처럼 보이는 소설 속 인물들의 알 수 없는 모순은 누구에게도 이해되기 힘든 현실을 만든다.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작품 해설을 보면서 다시 마음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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