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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Jul 27. 2020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 대한 기대보다는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믿을만한 혹은 내가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돈을 쓰게 된다. 어떤 대가가 아니더라도 돈은 내 마음을 줄 수 있는 좋은 것이 되었다. 물론, 그 돈의 양이 받는 사람이 가늠하고 기대하는 정도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건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고 나의 규모에 따라 내 마음을 표현할 때 돈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돈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그렇다. 글을 읽다가 응원하고 싶은 소식을 접할 때 웬만하면 바로 후원할 수 있는 계좌를 알아보고 일회성이라도 만원이라도 후원을 하거나 정기후원을 한다. 속이 터지거나 화가 나는 소식일수록 더 그렇다. 내 돈 일만 원을 보테는 일이 나의 감정 소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욕할 시간에 입금을 하는 게 내 신상에 더 도움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돈을 본 척 만 척했다. 이리 귀한 돈의 중요함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좀 더 부자로 살았으려나. 어렸을 때 엄마나 아빠가 “저거는 저거는 저래 돈을 아무렇게나 나둔데이”라면서 나무라던 게 기억난다. 받은 돈도 아무렇게나 두고 집안에 놓인 돈도 가져갈 줄 몰랐던 아이로 자랐다. 누가 날 이렇게 키운 거지? 돈 모른 척 유전자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돈을 벌 때도 돈이 귀한 줄 몰랐다. 월급을 받으면 전달 카드값으로 거의 나갔다. 물론, 엄마가 들어라고 했던 적금 때문에 많은 돈이 나가긴 했지만, 나머지는 거의 나의 유흥비와 옷값 등으로 나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껏 멋을 부리고 다닐 때였다. 친구들과 좋은 것, 예쁜 것을 찾아다녔고 큰 망설임 없이 샀다. 그때부터 다음 달 다음 달 물고 물리는 나의 돈의 적자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부모님은 살림살이가 어려웠지만 자식들에게 내색하거나 미루거나 부담을 주지 않았다. 큰 욕심과 큰돈을 쓰는 방법을 몰라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덕분에 나는 부잣집 자제처럼 (돈에 있어서는) 세상 천진난만한 표정만 지으며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 아빠는 철들지 못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딸 때문에 삶의 순간순간 아주 휑하고 서운하셨을 것이다. 그런 내가 돈을 중요하게 붙들고 싶었던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재 내가 돈을 얼마 벌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그럴 수 있는 날이 남아있을까라는 생각에 더 돈을 붙잡는 것 같다.

돈을 쓴다는 건 마음을 쓰는 거다. 그건 남에게나 나에게나 마찬가지다. ‘나를 위한 선물’이란 상투적 표현은 싫지만, 돈지랄은 ‘가난한 내 기분을 돌보는 일’이 될 때가 있다. 내 몸뚱이의 쾌적함과 내 마음의 충족감. 이 두 가지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내가 나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영영 모를 수도 있다.-<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신예희

타인에게 마음을 쓰기 전에 지금도 앞으로도 ‘가난한 내 기분을 돌보’기 위해서 돈은 필수다. ‘내 몸뚱이의 쾌적함과 내 마음의 충족감’을 위해서 내가 쓰고 싶은 돈을 쓸 수 있으려면 누구의 결재와 누구의 양보와 누구의 시간이 아니라 내 돈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능력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나 때문에. 돈을 생각하면 갑자기 급격히 초라해지고 나의 앞날에 안개가 낀 것 같다. 그러면서 그 안개 때문에 적금을 하나 더 들고, 나의 돈의 씀씀이를 돌아본다. 더 잘 쓰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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