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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Jul 25. 2020

기다림



올 봄 베란다 화분에 꽃씨를 심었다. m이 작년부터 꼭 심고 싶다고 한 거였다. m은  학교 가는 길에 어디선가 본 그 꽃에 대해 말했다.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던 그 꽃. m의 설명에 따라 나는 그 꽃이 무엇일까 상상했다. 우리는 그 꽃을 직접 찾아갔었다. 골목길을 따라 함께 걸어가던 날 m은 ‘오늘도 피어있을까? 없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해 했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면서 멀리서 한 곳을 응시하던 m은 ‘저거야! 저기 있다!’를 외쳤다. ‘어디, 어디?’ 함께 꽃을 발견한 나는 피식 웃었다. 이 흔하디흔한 꽃을 m은 그렇게 이야기했구나. 어디에서나 어느 귀퉁이에서나 보았을법한 꽃인데 천상의 어느 곳에서 처음 발견했을 법한 단어들을 쓰며 말이다.

그 꽃은 바로 나팔꽃이었다. 나팔 꽃같은 것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m의 설명에 따라 나는 이름도 모를 꽃의 빛깔을 상상했었다. m은 보라색과 자주색 두 꽃을 모두 심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잊혀지나 했는데 올 봄 씨앗을 심을 때가 되자 기억하고는 심고 싶다고 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넓지도 않은 베란다에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나팔꽃을 꼭 심어야하나. 보통은 상추나, 토마토, 바질을 심었었다. 이런 야채들을 심으면 따 먹기 좋을 정도, 맛보기 좋을 정도로 키울 수 있었다. 여기에 나팔꽃을? 잠시 망설이다 씨앗을 구입했다.

씨앗은 꽃의 색깔에 따라 두 종류로 구입했다. m은 씨앗을 보고도 행복해했다. 이 씨앗이 틔울 싹이며 꽃을 벌써 상상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화분과 베란다 작은 바구니 화분에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꼬박꼬박 물을 챙겨 주었다. 그렇게 씨앗을 심은 날부터 m의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한 달은 족히 기다렸다. 매일 매일 뚫어지게 봤는데 싹이 나오지 않는다. 덩달아 나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갑자기 나는 씨앗을 심는 무슨 다른 방법이 있었나? 나의 무지를 의심했다. 그러면서 말로는 태연하게 ‘곧 나올거야’ ‘나와, 나와’ 말했다. 그 태연한 속에 숨은 불안함이란.

그렇게 나팔꽃은 한참을 기다리게 하고, 불안하게하고 싹을 틔웠다. m은 처음 싹을 보던 날도 팔짝팔짝 뛰었지. 세상 가장 행복한 소리를 지르며. 이제 넝쿨을 뻗으며 자라는 나팔꽃은 해가 잘 들지 않는 우리 집 베란다에서 해를 향해가느라 한 곳으로만 뻗어나갔다. 아침마다 나팔꽃의 곱디 고운 넝쿨을 풀어 베란다 살 하나 하나에 옮겨 감아주었다. 처음에는 조금씩 감아가던 넝쿨도 제법 자라니 풀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베란다 살을 가득 채워 감아 올라가던 나팔꽃을 보던 m은 다시 ‘근데 왜 꽃이 피지 않지’ 한걱정이다. 나팔꽃은 길에서만 봤지 심어본 건 처음이라 나도 걱정이었다. 잎이 나고도 몇 달이 지났다. ‘아직은 멀었어’ ‘조금 더 있어야 해’ 나는 뭔가 아는 것처럼 또 다시 태연하게 아침마다 한마디씩 말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일어나 눈길을 돌린 그 곳에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보랏빛 꽃이 있었다. 아. 그 설렘이란. ‘m이 보았던게 바로 이거였구나.’ 나팔꽃은 하나가 피더니 여기 저기서 피어났다. m은 아침마다 마치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아, 너무 예뻐’를 외쳤다. 한동안 무리지어 찾아오는 직박구리 덕분에 행복했는데. 요즘은 기다림 속에 피고 지고 피고 지는 나팔꽃 덕분에 아침이 행복하다. 그런데 어쩌나……. m은 이제 또 다른 기다림을 시작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근데, 자주색 나팔꽃은 왜 안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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