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붉은낙타 Apr 19. 2020

까치밥

몇 달 전 지인이 대봉감을 많이 주었다. 두었다 홍시를 만들어 먹으면 맛있는데 막내가 홍시 만들어 먹기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더니 일부러 챙겨주었던 것이다. 그 대봉감을 거실 책꽂이 위에 나란히 두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익으면 하나 먹곤 했었는데, 먹는 사람이 막내뿐이니 잘 먹다가 마지막 남은 두세 개가 상하도록 먹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맛있는 홍시가 아깝기도 해서 어쩌나 하다가 집 앞의 새들이라도 먹을까 싶어 물이 줄줄 흐르며 썩어가는 홍시를 베란다 화단에 내다 두었다.

며칠이 지나 그 홍시를 먹으러 작은 새 한 마리가 시나브로 찾아왔다. 참새도 아니고 까치도 아니고 뭘까 하다가 사진을 찍어 긴가민가 검색하다 직박구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박구리는 우리가 거실에 있거나 없거나 조심스레 다가와 홍시를 맛있게 먹고는 떠나곤 했다. 그렇게 직박구리는 겨울 내내 우리 집 베란다를 들르며 남은 홍시 세 개를 모두 먹었다. 처음 올 때야 놀라고 반가웠는데 이후로는 길고양이 만난 듯 그냥 왔구나 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그때 만났던 직박구리는 요즘에도 홍시가 없는 우리 집 베란다를 찾아오곤 했다. 그 새가 그 새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 눈에는 같아 보였다. ‘쟤는 친구도 없나, 왜 늘 혼자 와서 먹지?’했는데 늘 혼자 와서 먹고 가곤 했다. 어제도 혼자와 내놓은 감 껍질을 먹고 갔다.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서 집에 있는 오래된 사과 하나를 갂아 내어 놓았더니 하루 사이 모두 먹었다.

점심때 남은 사과 하나를 내놓고, 어제 먹고 남은 식빵 자투리를 함께 내어 놓았다.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더니 산 너머로 물까치들이 우리 집 쪽으로 날아왔다 날아갔다를 번갈아 한다. 뭔 일이 있나? 베란다에 먹이가 있는 걸 아나? 책을 보면서도 힐끗힐끗 상황을 보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여기저기서 날아다니며 물색하기를 한참 하더니 갑자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한꺼번에 대여섯 마리의 물까치가 베란다로 날아들었다. 물까치들은 내놓은 빵 자투리와 사과 껍질을 하나씩 물고는 후다닥 날아간다. 물까치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직박구리는 베란다에 앉으면 한참을 혼자서 천천히 식사를 즐기다 가는데 물까치들은 떼로 와서 비행을 하며 망을 보더니 후다닥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식구들은 모두 놀랐다. 푸른빛이 아름다운 새였다. 까치보다는 작아서 예쁘다는 느낌이 절로 나는 새이다.

집에 썩어가는 홍시 하나 함께 나누려다 겨울에서 봄을 이어가게 되었다. 뭐가 없나 심심찮게 날아오는 새들도 반갑고, 뭐하나 나눌 수 있는 우리도 좋다. 집이 2층이라 길냥이들은 산너머로 물끄러미 쳐다보는 게 일이지만, 작은 베란다를 통해서라도 새들과 이렇게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참 좋다. 까치밥으로 맺은 인연이 다른 생명들에게도 연결, 연결되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유된 다리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