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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Aug 04. 2020

이번 생은 처음이라

휴가 첫날을 드라마를 보면서 보냈다. 어제 저녁 무렵 시작해서 아침까지 봤다. 계속 볼 수도 있었는데 오늘을 위해 잠깐 눈을 붙였다. 한 3시간 자고 일어나 다시 봤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만 봤다. 그렇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알고 있던 어느 페친이 추천했는데, 1화를 보다 이거 좀 심심한데 했는데 주욱 보게 됐다. (작가의) 의도적인 대화가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좋았다.

극 중에는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a와 방이 필요한 b가 나온다. 이들은 세입자와 집주인으로 만나 서로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계약 결혼을 하게 된다. a는 비혼주의자이고, b는 살 방이 절실했다. 필요를 충족하면서 서로에게 안전한 사람. 얼마나 완벽한가. 뻔한 로맨스로 흐를 것 같지만 드라마는 ‘꽤 오랫동안’(아마도 이 때문에 시청률은 지지부진하지 않았을까 싶다) 로맨스가 아닌 인물들의 ‘자기 스토리와 필요와 관계에서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얼마나 다 다른 필요와 관계를 원하는가. 이것을 담기에 전형적인 결혼은 얼마나 폭력적인지.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서로에게 안전한 사람, 안전한 관계.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요구하는) 폭력이 더 잘 보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경계를 무너뜨리길 요구하고 그것이 의무라고 말한다. 각자의 부모와 가정에 행해야 하는 노동 또한 그러하다. 사랑과 관계로 판단하니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도덕적 윤리적인 죄의식을 심어준다. 어디가 경계인지 주목하며 보다 보니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보인다. 애초에 ‘우리는 왜 결혼을 하는가’라는 뻔한 물음말이다. 각자가 결혼을 선택하게 되는 지점. 가치관이 다른 청춘들의 각자 다른 이유들. 그것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나 혼자가 아닌 타인과 살아간다면 표현하고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고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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