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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Oct 20. 2020

아이 엠 비너스



원래 일요일 저녁에 한다고 해서 보려고 기다렸는데 쏟아지는 잠에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11시 넘었나? 결국 쿨쿨 잠들었는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다큐를 만든 pd는 ‘내가 만든 다큐의 방영시간을 몰랐다니’라며 좌절하며 다시 방송 공지를 올렸다. 속으로 오호! 오늘 또 한 번 기다려봐? 라며 시간을 기다렸다. 자정이 가까워오는데 잠이 쏟아졌다.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다큐가 시작하고 나서는 잠이 훅 달아나서 오히려 재미있게 보았다. 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아이엠 비너스’는 그동안 역사 속에서 알려지지 않은 여성의 성기 ‘클리토리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큐 속에서 인터뷰한 어떤 여성은 내가 내 몸에 대해서 왜 이제야 알지? 왜 여태껏 몰랐지? 했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 예전에 ‘악어 프로젝트’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 포함된 것 다시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영상으로 보니 이해도 훨씬 쉬웠다.

내가 지금껏 알고 있고 교육받아온 여성의 성기는 ‘질과 자긍’ 중심이다. 성관계에 있어서 오르가즘도 어떻게 어디서 느껴지는지 교육받은 바 없다. 성에 대해 교육받으면서 욕구, 만족, 쾌감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수정, 임신, 낙태가 오히려 더 익숙했다. 10주 된 아이의 발바닥 모양을 나눠주던 때가 기억나기도 하고, 수정이 어떻게 되는지 본 영상도 어렴풋 기억나기도 하고, 낙태와 관련된 영상 또한 어디서 본 것 같다. 내가 받은 성교육의 대부분은 이렇게 임신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에 대해 한치의 어떤 의심도 없었다.

30대 초반이었을까, 알고 있던 동네 엄마가 남편과의 성관계가 늘 힘들고 아팠다면서 자기는 섹스가 무엇이 좋은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아주 의아했던 적이 있다. 이후로 그런 경험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을 종종 봤으며, 성관계에 있어 의미를 두지 못하고 두지 않는 여성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에게 성은 무엇일까. 기쁨을 느끼고 욕구를 충족하고 쾌락을 즐기기 위한 성, 오르가즘은 가능한 것일까. 여성들은 얼마나 느끼고 향유하고 있을까.

다큐는 시작에서 3d프린트로 만들어지고 있는 ‘무언가’를 보여준다. 그 ‘무언가’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클리토리스’였지만,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몰랐다. 성기의 앞부분에 조금 나온 부분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몸속에 들어가 있던 부분까지 합해진 전체 클리토리스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벨기에 다큐 감독인 다프네는 <내 이름은 클리토리스>라는 다큐를 만들고 이 모형을 만들어 알리는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클리토리스’은 해부학이 처음 만들어지던 때 의사들이 알리는 걸 원치 않았다.(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까?) 여성이 성적 쾌감을 느낄 수 있고 독립된 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한다는 것으로 세상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인간이 달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에도 외계의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한  자료 속 (남성과 여성의) 그림에서도 여성의 성기 모습은 지워졌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성기를 삽입을 위한 기관임을 말했고, 중세시대 성을 밝히는 여성은 마녀재판에 올려졌다. 그동안 이렇게 여성의 성과 성적 욕구는 더러운 것, 사악한 것으로 치부되었으며, 여성의 성기는 남성의 페니스에 반해 ‘없는 것, 결핍의 존재’가 되었다.

1998년 ‘클리토리스’는 온전한 모습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놀람! 정말 얼마 되지 않았구나), 이후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교과서에 성기 이름에 클리토리스를 넣고 여성에게도 성적 쾌락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음을 명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클리토리스’는 평소에는 10센티 정도이지만, 발기하면 2배인 20센티까지 부푼다. 다큐에서는 다프네와 한국 과학 교사들과의 만남이 나온다. 학교 수업 시간에 교육하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기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나라 교사들은 여성의 경우 자궁 나팔관 등 임신과 관련한 기관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심지어 요도 또한 교육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아이들이 질과 다른 ‘요도’가 여성에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다큐에 나왔던 보르도의 성치유전문가는 성적 기관으로서 쾌락을 담당하는 ‘클리토리스’가 매우 자립적이며, 여성의 성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는 여성들 중 18%만이 삽입으로 성에 대해 만족하고 있으며 이외 페이크 오르가즘이 다수를 이룬다는 이야기를 하며. 성의 행복은 단순한 말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된다 했다. ‘자기야, 손을 약간 왼쪽으로 움직여봐’ ‘자기야, 좀 천천히’가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청소년에게 질 높은 성 정보를 제공하면 스스로를 존중하고 이후 결정에 더 신중하고 책임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긴다. ‘너희 몸은 멋진 거야. 성관계는 기쁜 일이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은 결코 무조건 밖으로 뛰쳐나가 섹스를 하고 싶어 안달 나지는 않는다는 것.  

다큐는 앞으로의 성교육이 죄의식과 수치심을 가르키는 성교육, 방어, 예방을 위한 성교육, 교육이 아닌 협박의 성교육에서 벗어나야 함을 말한다. 관계와 기쁨을 가르치는 성교육으로의 전환을 말하며 프랑스(중학교였나 고등학교였나?) 어느 교실을 비춘다. 아이들에게 성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쓰라고 하고 아이들이 각자 쓴 단어를 모았다. 아이들이 중복하여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욕구, 기쁨’이었다. ‘쾌감 없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사랑은 그래서 관계이며, 꼭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조건에서의 첫 경험’을 가지게 한다는 것.

다큐의 전반적인 내용 정보도 참 좋았지만, 가장 마지막 나왔던 ‘가장 좋은 조건에서의 첫경험’이라는 말에 큰 동의가 되었다. (숨어서 보는 포르노가 아닌) 성에 있어 제대로 된 이해를 가지는 것이 ‘첫경험에서의 기쁨’과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성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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