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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Nov 24. 2020

내버려둬



정부가 임신 14주까지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한다. 이번 입법 예고는 지난 해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라고. 내용을 보면 임신 중기인 24주까지는 성범죄로 인한 임신이나 생계곤란 등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 가능함. 24주 안에 임신중단을 원할 경우 보건소 등 관련 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거침.

이 기사를 처음 본 나의 첫반응은? 그냥 욕이었다. 욕을 잘 하지 못하는 나는 ‘개쓰레기들’이라는 아주 점잖은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페북라인에서는 관련 집회 포스터도 보이고, 국민동의청원도 뜨고, 이랑님 이길보라님을 필두고 #낙태죄폐지 #낙태죄폐지하라 릴레이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1초 정도 릴레이선언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왜 설명하고(게다가 나는 어떻게 말하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청원을 하고, 외쳐야 하는지,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화가 났다. 임신, 임신중단과 관련하여 당사자가 가지는 여러 가지 감정들. 당황 불안 우울을 지나 나와 타인에 대한 실망과 좌절 모멸 죄책감. 그리고 그 이후에 다가오는 공포와 두려움. 이 반복되는 정신적 신체적 경험을 왜 또 늘어 놓아야하나. 왜.

바보 같게도 나는 최근까지도 임신 임신중단과 관련한 고민이 나만의 것인 줄 알았다. 6년 전인가. <자 이제 댄스타임>이란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영화에는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 같은 할머니들, 나의 엄마같은 어머니들이 나온다. 그리고 나를 닮은 누군가도. 이들의 인터뷰가 전부였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엄마-할머니로 이어지는 깊은 연결을 느꼈다. 오늘의 우리는 일생에 걸친 ‘수회’의 임신중단의 경험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여성만의 일이 아니다. 생존하는 모든 이의 것이다.

의료시설이 흔치 않던 시절, 피임조차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임신중단을 위해 스스로의 몸에 수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던 할머니들이 나의 할머니였다. 세탁소집 딸인 내가 늘 봐왔던 철옷걸이부터 시작해 임신중단을 위해 엄마와 할머니들이 필사적으로 시도한 방법은 지금의 여성들이 가지는 불안과 고민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철옷걸이가 오늘의 병원이 되었다고 무엇이 나아졌는가. 오늘 국가는 다시 잣대를 만들어 그렇게 연결되어 온 여성을 처벌한다고 한다. 글을 쓰다 보니 더 화가 난다. 그냥 좀 내버려둬라.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게.

* 아래는 집에서 오붓하게 외치는 구호입니다. 맘에 드는 기사에서 뽑아봤습니다.

‘여성은 처벌을 피하려 출산하지도, 처벌을 안 받으니 임신하지도 않는다’(20.10.7)
‘단지 처벌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낙태가 늘어날 거라고?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는거 아니다’(18.5.30 신한슬 ‘편한 낙태는 없다’)
‘임신중단에 허락은 필요 없다’(20.9.24 모두의 페미니즘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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