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by 붉은낙타



미소는 행복하다.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45,000원 일당을 받고 담배를 사고 위스키를 마시고 한솔과 논다. 입김이 나는 추위와 벗어도 벗어도 다 벗지 못하는 옷 때문에 오늘의 섹스는 내년 봄으로 미루지만, 그래도 미소는 ‘그냥’ 괜찮다. 오늘도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 한잔을 마실 수 있고, 한솔을 만날 수 있으니까. 그냥 괜찮다. 해가 지나고 담뱃값이 2천 원 오르고, 방값도 오르면서 미소는 집을 나온다. 대학 때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 집을 전전한다. 나는 전전한다는 표현을 썼지만, 미소가 안다면 ‘그건 아니야’ 했을 것이다. 돈이 없어 집을 빼기는 했지만 그동안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그저 ‘보러’ 다닌 것이다. 그 친구들 중 나도 있을까.

취향 확실하고, 가사도우미라는 자기 일에 대해 확실한 미소. 취향을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 사전을 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나 욕구 따위가 기우는 방향’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미소는 자기가 뭘 하면 행복한지 좋은지 아는 사람인 거다.

“솔직히 요즘 집세도 오르고 담뱃값도 오르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잠시 집을 나왔지. 이게 그렇게 이상한 이야기인가”

미소는 언제나 ‘자연스럽다.’ 직업이 뭐냐고 묻는 사람에게 가사도우미라고 하고, 제 아내와 같은 학교를 나오셨다고요? 묻는 사람에게 등록금이 비싸서 중퇴를 했다고 한다. 비꼬거나 누구를 비난하거나 화내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는 늘 ‘자연스러운’ 말이다. 너의 취향이, 담배와 위스키에 대한 사랑이 너무 염치없다고 말하는 선배에게도 크게 화내지 않는다. 선배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이지 원망하지도 않는다. 선배가 예전의 미소에 대해 다단계로 뜯긴 돈을 갚아준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한다. 그런 그를 한솔은 떠난다. 함께 할 집이 없는 현실에서 한솔은 웹툰 작가를 그만두고 보증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지원한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미소는 계속 그림을 그리라고 하고 지금의 내가 좋다고 하지만 한솔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한다. 2년을 기약하고 한솔은 떠난다.

“우리 상상력을 발휘하자. 함께 있는 거라고.”

한솔이 떠나고 담배와 위스키만 남은 미소는 어떻게 살아갈까. 흔들리는 불꽃처럼 한강변의 작은 텐트 하나가 반짝인다. 미소는 담배와 위스키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미소의 머리칼은 더 하얘지고 영화의 마지막 미소의 얼굴은 비치지 않는다. 미소의 얼굴은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미소의 표정을 보고 싶은데. 영화는 개운치 않다. 즐겁지도 않다. 곳곳 웃음을 주는 부분이 많고 내내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고 있지만 말이다. 점점 하얗게 변하는 미소의 머리칼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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