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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Jan 01. 2021

아무것도 아닌 나로 살기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한건 없는데 기대하는 건 많아졌다. 다른 사람 말고 나에게 말이다. 그렇다. 고백하자면 나는 다른 누구보다 나에게 관심이 제일 많았던 것이다. 나에 대한 관심이 내면의 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면 좋으련만 이 부질없는 자기애는 식욕을 자극하는 베이커리 가게의 예쁜 조명과 달콤해 보이는 딸기 장식처럼 전시에만 관심이 갔다. 글쓰기를 하면 할수록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 나는 누구보다 잘 보였다. 안경을 쓰지 않아도 조명이 없어도 어두운 곳에서도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글쓰기를 하고 싶지 않은 날이 많았다. 나를 실망하게 하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았다. 화려하고 밝은 조명 속에 빛날 것만 같던 나의 미래를 나의 모습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더 있을 거야, 이건 아닐 거야, 나에겐 남들이 모르는 초능력이라도 있지 않을까, 가끔 그런 미친 상상을 한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변신하는 나의 모습을 말이다. 상상의 나래 속에서 착각의 나래 속에서 나만의 방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아 오락가락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 오락가락의 줄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 믿을 게 뭔가 말이다. 내가 가장 의심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줄타기하듯 글쓰기를 한다. 유혹의 글쓰기, 자기애의 글쓰기, 비참함의 글쓰기, 기록의 글쓰기, 고백의 글쓰기, 위로의 글쓰기, 욕망의 글쓰기, 용기의 글쓰기, 거짓의 글쓰기, 상상의 글쓰기, 착각의 글쓰기, 눈물의 글쓰기, 변신의 글쓰기, 인정의 글쓰기, 혼란의 글쓰기...... 나의 글쓰기가 반짝이는 날은 어떤 날일까. 나는 반짝임에 대한 욕망이 있다. 나의 삶이, 그 무엇보다 반짝이는 내가 되고 싶다.

No need to hurry
No need to sparkle
No need to be anybody but oneself - 버지니아 울프

어쩌지, 아무래도 난 멀었나 보다. 반짝임을 욕망하는 나는 반짝일 필요 없다는 울프의 이 말에 끌리는. 여전히 이상하고 반쯤 멍한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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