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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낙타 Nov 24. 2020

핑게 아닌 사실



오랜만에 걷기를 했다. 힘들고 우울할 땐 의욕도 없다. 간만에 충전 중이다. 충전도 시동도 컨디션이 회복되어야 가능하다. 문득 걷다가 난 왜 이렇게 좋아하는 운동이 없을까 생각했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유년기에 스포츠클럽을 누구나 다닌다는 유럽 인간들은 성인이 되면 나는 학교 다닐 때 ***선수였어, 나는 ****선수였어, 한다던데 나는 선수는커녕 그동안 배운 운동도 없다. 어렸을 때 한 운동이라고는 아빠가 끌고나가서 함께 한 배드민턴이 다다. 그것도 일요일 아침 정도에 한번씩 몇 살까지 했는지도 모르겠다. 배운게 없으니 나이들어 좋아하는 운동도 없는 건가 싶다가, ‘왠 핑게냐?’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근데, 몇 걸음 걷다가 ‘이게 핑겐가?’ 싶었다.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지도 않으면서 어떤 이유를 찾게 되면 ‘핑게 대지말자’는 생각이 저절로 드나보다. 방금 내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저절로 작동했다. ‘핑게 대지말고 열심히 할 운동을 찾아봐’라고 말이다. 왜 좋아하는 운동이 없을까 생각한건,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싶어서’였다. 코로나 이후로 요가를 멈춘 이후로 걷기만 주구장창 하고 있다. 걷기는 참 좋다. 아무 생각 없이 내 호흡에 의지해 걷는 것도 좋고, 맘 맞는 팟캐스트 하나 들으며 걷는 것도 좋고, 간만에 노래를 듣는 것도 좋고, 잡생각에 꼬리를 물며 걷는 것도 좋다. 좋은데 근데 그게 이프로? 아니 한 삼십 프로 부족하다. 뭐랄까 열정, 땀, 카타르시스, (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다면)오르가즘이 없다. 지금 내게 필요한건 분명 이런 건데 말이다. 그냥 지구력을 쌓을 것도 아니고 명상을 할 것도 아니고 화끈한 한방이다. 코로나 이후로 온몸을 꽉 짜낸 나의 땀이 그립다. 열나게 즐기고 온몸에 땀을 쫙 빼네는, 치열한 내 몸 구석 구석을 부대끼는 그런 운동이 그립다. 그런 즐거운 운동을 상상하다, 난 왜 그런 운동하나 가지지 못했을까(혹은 현재 할 수 없는 것일까 욱, 열 받다) 상상하다, 유럽 인간을 떠올리고, 난 왜 그런거 하나 배우지 못했나 생각했던거다. 그러고 보니 이건 핑게가 아니라 그냥 ‘사실’이다. 유년기 시절 배운 거라고는 초등학교 1학년 주산학원이 시작이고 끝이었다.

공을 굴리며 치열하게 달리는 (지금의)자신을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 김혼비 작가는 한 순간의 경험이 자신을 이렇게 바꿔놓을 줄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보면서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좀 더 어렸을 때 이런 경험을 했다면! 이라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비슷한)구절을 썼다. 만약 그랬다면 중독에 약한 나는 아마 (무슨 운동이었을지는 모르지만)운동을 통한 무아지경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청춘의 한 페이지를 치열한 땀이 오고갔을한 장면으로 장식했을 것이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 느꼈을 희열과 짜릿함과 카타르시스를 잊지 못해 바보같이 그 힘든 운동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러다 다른 운동으로 갈아탔을 수도 있었겠지. 그러다 어디 한구석 심하게 다쳤을라나. 하하하.

좋아하는 운동을 상상하다 핑계대는 나를 발견하다 핑게도 아닌 것을 뜬금없이 반성하는 나쁜 버릇을 욕하다 나의 생각이 뭐였나 거슬러 올라갔다. 결론은, 사실이 그렇다는 거다. 아쉽지만 나는 유년기 다양한 운동 경험의 부족으로 현재 즐길 줄 아는 운동이 없다는 거다. 아! 씨! 근데 땀을 좀 흘리고 싶으니, 지금 이 분노를 좀 태우고 싶으니, ***을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분노와 화를 태우는데는 ***만한게 없을 것이다. 흑흑흑....... 아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게 그거라서 그런 거다. 흑흑흑....... 멋있게 서핑보드나 축구나 야구나 배구나 농구나 스킨스쿠버나 뭐 이런 종목을 좀 얘기하고 싶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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