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닌 생명을 곁에서 느낀 경험이 없다. 반려동물을 곁에 두지 않아서겠지. 만지는 일이 두렵고 쉽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아. 그건 또 아닌가. 나는 이미 곤충도 너무 잘 잡는데. 그래, 잡는 것과 껴안는 일은 다르지. 뭔가를 잡을때 그것은 생명으로 존재하는건 아니니까. 물건처럼 느껴지는 거니까 그러니까 더 잡을수 있는거겠지.
아이들이 곤충, 그 중에서도 사마귀를 보는 눈을 보면 참 신기하다. 신비롭다. 생명을 껴안는 일, 품에서 느끼는 일. 맥박도 없을 사마귀의 맥박이 들리는것 같고 여리디 여린 다리의 흔들림이 전해지는 것 같다. 움직임, 전율, 소리 그런 건 어떤 것일까. 아이들에겐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파동이라는건 이런 것일까.
볕 좋은 오후. 따끈따끈해서 맨발을 디디기 힘든 놀이터 바닥을 아직 보송보송한 발들이 디디고 선다. 보얀 먼지가 한가득인 발들은 다시 모래를 묻히고 흙을 묻히고 돌멩이 위에 선다. 사마귀에게 따끈한 볕을 주기 위해서 함께 산책하는 누군가가 된다. 하루에 한두번 아이들은 키우는 사마귀를 산책시킨다. 손에 올리기도 하고 바닥에 두기도 하지만, 진정한 산책은 다시 자연속에 두는 일. 그가 원래 있었던 공간에 두고 쳐다본다.
아이들은 오래동안 사마귀를 쳐다본다. 그 아이들을 내가 본다. 어디를 보는지 무엇을 보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손은 무얼하는지 어떻게 앉아 있는지. 아이들의 발바닥이 보인다. 바닥에 선 발바닥. 꼬리를 향하는 일, 다리를 손에 올리는 일, 허리를 잡는 일, 눈을 맞추는 일. 그 어느 것도 쉬운 일이 없다.
2년전 그렇게 산을 다니고 공원을 다녀도 나뭇잎 위의 사마귀를 보지 못했던 k도 h도 이제는 사마귀가 보인다는 사실이 나는 어느 철학자의 진리보다 가까이 느껴진다. 햇빛에 비친 잎들은 물결처럼 색이 바뀐다. 어느 곳은 어둡고 어느 곳은 지나치게 밝아 눈이 부시고 더위에 땀이 흐르고 온몸은 열기로 가득찬다. 그렇게 지켜보는 눈들은 호랑이를 찍기 위해 호랑이 숲에 들어가 그들의 옆에서 웅덩이를 파고 몇날며칠을 지냈던 사람을 떠올리게도 한다. 웅덩이 속에서 그가 처음 만났던 호랑이와의 순간은 그를 그냥 호랑이로 있게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이미 사마귀처럼 존재하기도 한다.
사마귀의 입을 만지고 다리를 만지고 날개를 만지는 손들은 이미 사마귀가 되었다. 아이들은 키우는 사마귀에게 자연을 주고, 탈피를 지켜보고, 사람의 나이에 맞춰 그의 나이를 짐작한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 정도도 짐작해본다. 그러다 죽기도 여러차례. 실망하지만 길지 않고 금새 잊어버린다. 참 좋다. 이미 다른 곳으로 목을 쑥 빼는 모습을 배우고 싶다. 아무곳으로나 우선 목을 쑥 빼놓고 보는 아이들. 놓치지 않으려는. 집중하고 관찰하는 눈은 거짓을 말하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