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주지 않는 돌직구
보노(1.5세)는 생애 처음으로, 온전한 내 책임으로 키우게 된 강아지다. 자신만만했다. <동물농장> <세상에 이런 일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등 각종 동물 교양 프로그램 애청자인 동시에 30년 동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곤 친동물 인간으로 살아왔다. 어설프게 아는 게 더 위험한 걸 몰랐던 게지. 초등학생 땐 후문 앞 공장에서 키우는 진돗개를 (위협당하면서도) 멀리서 쪼그려 앉아 구경했고, 중학생 땐 동네 길고양이 존에서 시간을 때우고 길에서 만난 유기견을 데려다 씻긴 적도 있었다. 고등학생 땐 운동장에 모여사는 비둘기에게 밥을 준 적도 있었다(그땐 이게 잘못인지 몰랐지). 그대로 자란 '자칭 타칭 동물 애호가'인 대학생의 나는 고물상에서 키우는 개에게 먹을 걸 나눠주다 손가락을 물리기도 했다. 눈물 질질 짜며 꽤 깊은 상처를 소독하면서도 그 개를 원망하진 않았다. 그 당시엔 동물을 사랑해'준'다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많이 실례하며 자라온 것 같다.
강아지를 입양하고 처음 한 달간 도통 얘가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물을 마시고, 갑자기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갑자기 다가와 나를 핥아준다.
왜? 갑자기? 뭐야?
그 한 달간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이었다. 말 그대로 내뱉었다. 이 아이의 의도가 조금이라도 가늠이 안돼 의식을 거치지 않고 입에서 튀어나온 말들이었다. 내가 말을 걸 때마다 보노는 고개를 양쪽으로 90도씩 세차게 꺾었다. 그 갸우뚱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남들이 보면 창피할 혼잣말을 많이 쏟아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을 관찰의 시간을 갖고, 두 달은 패턴을 읽고, 세 달이 되어서야 이 아이의 생활과 생각을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몇 년 더 함께하다 보면 강아지가 말을 걸어온다고 한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한 평생 같이 지내도 소통 오류로 틀어지곤 하는데, 강아지랑 대화를 한다니 참 우스운 얘기다. 아무리 그래도 답답하지 않을까?'라고 3개월 전의 내가 말한다. 보노와 대화를 나눌 그런 날이 눈 깜빡하면 다가올 것 같다. 먹고, 싸고, 잘 때를 빼고 강아지를 지켜본 바, 이들의 언어는 상당히 직관적이다.
강아지의 표현은 재고 따지지 않는다. 상대적이지만, 상대적이지 않다. 그들의 언어는 상대를 향하지만, 상대를 계산하지 않는다. 예절, 인사치레, 상투적인 말로 줄다리기하지 않는다. 좋으면 좋은 거다. 싫으면 싫은 거다. 좋으면 웃는다. 꼬리를 흔들고, 다가와 냄새를 맡고 핥는다. 신나면 깡충깡충 뛰고 힘들면 헥헥대며 있는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다. 의도를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행복한 표현을 구경하다 보면 동기화되곤 한다. 입꼬리를 내리고 인상을 쓴 나의 표정이 강아지 꼬리처럼 휙 올라간다. 깡충깡충 뛰는 모습이 좋아 폴짝폴짝 뛰며 같이 웃는다. 강아지의 표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행복한 강아지가 된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싫으면 싫다고, 그때그때 말하면 어렵지 않다. 관계를 망치지 않는 쉬운 방법은 튀어나온 표현을 꼬지 말고 그대로 두는 것이다. (리빙센스!)
나는 참 미련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문을 채 닫기도 전에 걱정과 근심, 아쉬움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나를 따라 들어온다. 인간관계가 늘 그렇다. 그들의 한숨에 물들기도 하고, 나의 한숨에 애먼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 지독한 집순이라설까 내가 바깥에 남기고 온 한숨들을 미처 거두지 못했다는 찝찝함이 나의 일상을 괴롭힌다. 집구석 어딘가에 쌓아뒀어야 할 한숨을 밖에서 잃어버리고 온 것같다. 라고 3개월 전의 내가 말한다. 강아지는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마음의 유실을 좇고 거품처럼 불어난 미련의 행방을 찾아 집구석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때면 강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멍(1차원)!
멍(1차원)!
그래, 그렇지. 멍멍. 거품처럼 불어난 미련에 물을 뿌린다. 배배 꼬인 생각은 배배 꼬인 관계를 만든다. 내가 지나간 것을 붙들고 있어 봐야 강아지랑 놀아줄 시간만 줄어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고, 아끼는 사람과 가까운 곳에 머무른다. 덕지덕지 꾸밈구를 붙이고 너덜너덜한 마음을 꿰맨다고 뭐가 달라질까.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적어도 간식이라도 받을 수 있는 거다. 맛있는 거 먹고, 신나게 놀고, 포근하게 꿀잠 자는 것, 강아지의 목표를 좇으면 나의 삶도 귀여워진다. 그렇게 세상은 귀여운 것들에 의해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