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나의 살던 고향은...
지금 생각해보면 다사다난했던 중학교 시절이었지만, 그럼에도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복실이]가 항상 내 옆에 있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힘들 때마다 언제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지켜봐 주던 그 아이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었죠. 사람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아픔을 줄 때, [복실이]는 내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습니다. 그 아이를 쓰다듬는 것만으로 마음이 진정되고, 아무런 걱정 없이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복실이]였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어머니께서 가게를 정리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살던 동네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죠.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가득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심란했습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만났던 소중한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오락실을 가고, 농구를 하고, 쉬는 날엔 함께 모여 놀았던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과 이별한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정들었던 곳을 또 다시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동네는 추억 속 행복하기만 했던 곳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변했듯이 친구들도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또 다시 이방인이었고, 그들의 텃새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가장 친했던 친구들 역시 지나간 시간만큼이나 어색했고 그 관계를 회복하는 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에서도 내가 마음을 둘 곳은 없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복실이]를 품에 안고 겨우 잠을 청했습니다.
사실 [복실이]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려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문제의 답을 해결하는 순간, 언제나 나의 곁엔 [복실이]가 함께 있었죠. 그 아이와 함께 있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힘든 마음을 숨김없이 말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상황이나 맥락이 정리되면서 해결책이 떠오르곤 했죠.
어쩌면 그 아이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상담가’인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와 함께 하며 깨닫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의 짐을 줄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신건강 분야에서 일을 하는 지금도, 당장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편이구요. [복실이]가 나에게 준 소중한 교훈은 내가 지금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결심했죠. 한 때는 꿈을 잃어버린 공허함에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우선은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참고서를 사고, 문제집을 풀며 그 동안 소홀히 했던 공부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죠. 운동만 하느라 중학교 시절 내내 외면했던 학업 과정들이, 이제는 성적이라는 이름으로 날아와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아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