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JU_제주, 발리, 싱가폴, 하와이 워킹맘의 열흘살기 여행
정신차리고 보니 40대가 되어있었다. 무얼 위해 하루하루를 미션처럼 치열하게 살았는지. 큰 아이 낳고 8개월 때 주말부부가 되어 이후 8년간 지속된 주말부부 생활. 둘째까지 태어나면서 '나만의 시간'이 없었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속 이야기를 꺼내며 글을 쓸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20대 때 글 쓰는 직업을 가지면서 생긴 안좋은 습관은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술술 글이 써지는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새벽시간이란 밀린 쪽잠자기 바쁜 시간. 그렇게 성찰하고 사색하며 글을 쓰는 나만의 시간은 멀어져갔다.
활동적인 성격에 육아에만 집중하는게 힘들어서 아이들이 어린이집 가는 동안 틈틈이 일반 유치원 특강강사, 영유 담임교사 등을 하며 경력을 이어나갔고 스스로 번아웃이 오고 휴식이 필요하다 느끼면 남편 휴가기간과 나의 휴가기간을 맞춰 남편에게 아이둘을 맡기고 나홀로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도 두어번 다녀오고 홍콩은 조금길게 4박5일을 계획했는데 5일동안 아이 둘을 혼자 볼 수 있다며 큰소리를 치던 남편은 이틀만에 코피터지고 나의 친정으로 달려갔다. 아침먹이고 설겆이 하면서 시계를 봤더니 점심 먹일 시간이었다나 뭐라나?
나는 일년에 여름, 겨울 두번은 일주일 정도 쉬는데 앞뒤 주말을 붙이면 최대 열흘을 쉴 수 있다. 남편과 휴가가 겹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남편 휴가만 기다릴 순 없어서 둘째가 기저귀와 이유식을 떼고 식당밥을 먹여도 죄책감이 들지않던 4살부터 열흘살기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이둘을 데리고는 잠깐 집앞에 나가도 챙겨야 할 게 많다. 유모차, 물티슈, 물, 떡뻥 과자 등등. 하물며 홀로 아이둘을 데리고 길게 여행이란 사실 고난에 가깝다. 친구 몇몇은 대체 그게 무슨 여행이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첫 시작은 가까운 제주였다. 파워J라 여행을 계획하고 짐 싸고 푸르는 건 일도 아니지만 둘째가 4살이라 휴대형 유모차에 트렁크 두 개 까지, 사실 짐싸면서 한 번 망설여졌다. 나만 고생이면 괜찮은데 애둘이 번갈아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미치자 여행취소는 커녕 감기약을 더 챙겼다.
아이들에게 경험의 폭을 넓혀주는 게 내 여행의 목적이기에 비행기는 많이 타봐서 배로 항로를 틀었다. 전남 완도에서 제주로 가는 배편은 하루 세 번 운행하고 진도항 다음으로 제주도로 빠르게 도착한다. 소요시간도 2시간 30분으로 짧아서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오후 3시 실버 클라우드 호 다음으로 큰 대형 페리인 블루펄을 탔는데 사람은 800명 이상, 차는 300대 이상 선적 가능한 아주 큰 배였다. 그날따라 새벽부터 비가 심상치 않게 내리고 풍랑이 커 배가 뜨네 안뜨네 대기를 하다 탔지만 배 타고 제주는 처음이라 너무 설레였다.
배안에서 아이들과 타이타닉 이야기를 하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 배가 왜이렇게 흔들리지 하며 잠이 깬 순간 뒤에 가족단위로 왔던 아이 아빠가 일어서다 중심을 못잡고 꼬꾸라졌다. 다른 성인 남자도 일어서는데 몇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토를 하였다. 높은 파도를 따라 출렁이는 강력한 배멀미에 성인 남자들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상황을 보며 나도 속이 미식거렸지만 몹시 흔들리는 배안에서 튕겨져 나갈듯한 두 아이를 꽉 붙잡으며 파도가 잠잠해 지기만을 기다렸다.
여기저기서 토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안간힘을 다해 멀미를 참아내는데 큰애는 울고불고 둘째는 나에게 분수토를 하고 말았다. 내가 추구하는 여행의 경험으로 치면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제주도는 비행기타고 가는 겁니다. 여러분~
우여곡절 끝에 제주항에 도착했고 둘째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배 싫어~" 첫째는 "다신 배 안 타"를 무한 반복하였다. 배를 쳐다도 보기 싫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린 우리 세 모녀의 제주 열흘살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