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에 홍콩을 가보고 중화권 나라에 흥미를 잃었다. 어렸을 적 봐왔던 첨밀밀, 중경삼림, 영웅본색 속의 홍콩만 생각하고 6년 전 직접 본 홍콩의 갭이 너무 커 실망스러웠다. 세계제일의 미식의 나라인데 길거리 음식도 입에 잘 안 맞고 좁은 거리마다 흡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코를 틀어막고 다녀야 했다. 영어도 100% 통하지 않아 길을 물어봐도 중국식 영어로 답해주는 사람도 많아 한번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침사추이 숙소 반대편 건물의 창문을 통해 현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들이 보이고 에어컨이 없는지 죄다 웃통을 벗거나 메리야스 차림에 창문과 집안 곳곳에는 빨래를 잔뜩 널어놓은 채 사는데 보기만 해도 답답함이 들었다. 워낙 작은 면적의 땅에 값이 비싼 홍콩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니 당시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쇼핑으로도 유명한 홍콩이건만 내가 갔을 때는 한국인이 선호하는 모던하고 세련된 옷보다는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커다란 브랜드 로고가 박힌 그런 옷들이 많아서 쇼핑도 꽝, 미식도 꽝, 여행지의 쾌적함도 꽝. 그냥다 꽝이었다.
대신 여자아이들에게 예쁜 현지 브랜드 하나를 발견해서 합리적인 가격에 애들 옷과 신발과 소품 등을 많이 건져서 그거 하나 만족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싱가포르를 좀 더 쾌적한 버전의 홍콩이라고 생각하고 떠났다.
곳곳이 공사중이었던 싱가포르 숙소 주변
싱가포르 열흘 여행동안 3곳의 숙소를 예약했는데 도착 후 이틀은 쇼핑몰이 많은 중심부 오차드 로드 지역에 묵었다. 숙소에서 몇 분만 걸으면 이렇게 크고 작은 쇼핑몰 수십 개가 길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양가 할머니가 좋아하는 한국 화장품이 있다고 아이들이 찍어달라고 했는데 한국보다 몇 배 더 고급스럽게 디스플레이를 해놓았다.
싱가포르 쇼핑몰 중 가장 럭셔리한 마리나베이 샌즈 쇼핑몰에서 바차커피를 시음하고 밖으로 나왔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 샌즈호텔의 왼쪽에는 꽃모양의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이 눈에 띈다. 싱가포르는 건물 디자인이 창의적이고 똑같은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한국에서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와 건물들만 보다가 색다르고 개성 넘치는 건물들을 보니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에서는 퓨처월드 '팀랩'이 전시 중이었는데 한국에서도 여러 번 경험했던 전시라 패스할까 했지만 싱가포르에서 보는 것도 색다를 듯 해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 보았다. 대체로 한국 전시와 비슷했지만 사람이 그네를 하나씩 이동할 때마다 색이 바뀌는 곳은 신비로운 음악과 함께 한 사람씩 체험할 수 있어서 아이들이 흥미로워했다.
다리가 아파 올 때는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싱가포르는 지하철 또한 넓고 쾌적하고 정말 길에 쓰레기 하나 없었다. 싱가포르가 법이 엄격하다고 해서 애들한테 오기 전 껌을씹어도 벌금 내야 한다고 여러 가지 주의를 주었는데 가는 곳곳 대체로 깨끗하고 길거리에 노숙자 한 명 볼 수 없어서 엄마혼자 아이 데리고 첫 해외여행은 싱가포르를 추천한다.
홍콩에 살던 많은 외국계 회사 사람들이 일자리를 싱가포르로 옮겼다고 들었는데 같은 값으로 더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한국에 인접한 동남아 중에서 처음으로 살아보고 싶은 나라가 나에겐 싱가포르다. 치안도 자연환경도.
아시아 중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선진국에 GDP수준도 우리나라의 두 배인데 왠지 묶여서 동남아로 불리기엔 억울할 듯하다. 싱가포르는 도시자체가 랜드마크이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 어쩜 이렇게 배치도 잘하고 오밀조밀 많은 것을 넣었을까? 첫날임에도 궁금증이 들었다. 내일은 자연 쪽을 둘러봐야겠다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