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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Mar 23. 2024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13년 만에 9TO6 회사로 출근을 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했다. 나름에 직장 생활은 인정받는 열정 직원이었다. 비서로 입사해 총무에서 인사팀으로 전배를 하면서 일에 자부심도 느끼며 신명 나게 일했다. 결혼하고 출산 직전까지 알차게 근무를 했지만 복직은 내게 겁나는 일이었다. 이유는 하나 육아의 부담이 내 발목을 잡았다.


  정규직을 포기하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재택근무도 병행했지만 남편은 출근을 하지 않는 나를 직장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행복했지만 반면 나라는 존재감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그저 집에서 밥하고 아이보고 남편 뒷바라지 하다 삶이 끝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점점 쌓여갔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친정 엄마와 함께 살았기에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도 쉽게 내색할 수 없었고 육아는 친정 엄마의 눈높이에 맞춰서 더 열심히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자리했다. 시댁살이였다면 아마 며느리에 마음이 이러했을까.


  성취감으로 삶을 지탱하는 성향이 강한 나로서 전업주부로 살면서도 일할 곳이 있으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sns 부업도 도전하고 우울감도 책을 읽는 시간으로 버텨왔다. 그 시간을 지탱해 주는 나의 기준, 행복감은 아이였다. 전업주부의 삶이 왜 힘든지 모르는 남편에게 기대감은 전혀 없었기에 외동딸 한 명이라도 엄마의 그늘에서 불안하지 않고 단단한 유대감으로 따뜻하고 배려 깊은 아이로 자라도록 돕는 것. 그게 엄마의 사명이라 믿었고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나의 의지와 기대는 무너졌고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예측 불가능한 불안감으로 엄마로서의 능력을 의심하게 했으며 그럴 때마다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졌다. 자존감은 점점 무너졌고 자신감은 안드로메다로 처박혔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다. 힘든 순간을 이겨내면 아이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웃어주며 엄마에게 사랑을 한없이 뿜어낸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육아의 힘든 과정, 불안, 고통, 죄책감은 아이가 엄마에게 뿌려내는 고통의 줄기가 아닌, 엄마 마음 자체에서 뿌리내리는 나약한 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서를 수십 권 읽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읽지 않는 육아서는 독이 되었고 나의 처지와 저자의 상황을 비교하며 나와 다르니까 가능해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런 악순환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육아서를 끊었다. 읽을 만큼 읽었으니 내가 할 일은 실천하는 것뿐이기에.


  이대론 죽도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외동딸 하나 키우는 게 뭐 그리 큰 대수라고 유별나다고 생각하겠지만 외동 엄마도 처음이고 아이가 하나라 엄마로 마주하는 육아의 과정은 언제나 새롭고 낯선 상황들이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아이는 자기의 몫을 잘해주었다. 원하는 건 해내려고 최선을 다했고 꿈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세상에 자기만의 꿈과 목표가 정확한 아이로 자라주었다. 그런데 난 왜 여전히 불안하고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힘든 걸까. 그건 엄마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행동이 불만족스럽고 아이의 인생을 엄마의 노력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 엄마도 아이도 힘든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사춘기 관련 육아서를 펼쳤다. 아이는 성장하고 있는데 난 여전히 어린아이로만 생각하는 마음. 그래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 참견하고 신경 쓰고 케어하려는 그 참견을 내려놔야 함을 깨달았다. 이걸 왜 책을 읽고서야 느끼냐고 묻는 다면 나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매일 반복적인 루틴은 나를 변함없는 엄마로 만들었고 아이 역시 그대로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아이로 자라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딸 역시 어린 나처럼 사춘기 없이 순하게 착하게 자라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어디서 시작된 확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와장창 깨트리기로 했다.


'엄마 스스로 아이에 대한 기대감을 먼저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아이에 대한 나의 시선과 생각을 조금씩 내게로 돌렸다. 스스로 물건을 챙기고 시간을 체크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은 어색하고 놓치기도 했지만 엄마의 의심과 달리 아이는 잘 해내고 있었다. 한 발만 뒤로 물러나면 스스로 해냈다. 어느새 훌쩍 자란 딸아이를 마주했다. 나만의 시간이 늘었고 아이와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함을 느끼니 일을 시작해도 좋겠다는 자신감이 커졌다. 나의 일을 시작할 기회라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잡코리아를 열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했다. 알바몬도 함께. 어느덧 12년 만에 만져보는 자기소개서. 쓸 말은 없었지만 솔직하게 나를 소개했다. 경력을 포기하고 신입이라도 좋으니 일할 자리가 주어진다면 열정적으로 일하겠다고. 그리고 지금의 난 경력을 내려놓고 신입으로 워킹맘이 된 지 4개월이 되었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부모의 양육 태도와 마음가짐도 변해야 함을 이제야 알았다.'


함께 가던 병원을 이젠 혼자 가서 진료를 보고, 하교 후 간식을 혼자 챙겨 먹고 시간에 맞춰 학원을 다녀오는 아이를 보니 언제 이렇게 훌쩍 커져버렸는지. '사춘기가 오면서 너의 성장은 빛을 발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함과 아쉬움이 오묘하게 섞이는 퇴근 후 아이를 마주하는 시간. 이토록 건강하게 자라 줌에 감사하지 못하고 내가 정한 틀과 방식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다그치고 혼냈던 자신을 반성한다. 물론, 엄마의 마음이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다시 잔소리가 시작되지만 그 잔소리를 멈춰주는 적당한 거리를 둔다는 건 분명 사춘기 성장에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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