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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Mar 30. 2024

너의 방학이 괴로워

워킹맘의 방학로드

  13살의 계절로 들어선 딸과 43살 중년의 문턱을 갓 넘은 엄마는 겨울 방학이 지옥이다. 서로 날 선 말투와 눈빛으로 의도치 않은 생채기를 남긴다. 그 끝은 언제나 후회뿐이지만. 우리가 놓인 지옥은 언제나 새로운 날처럼 시작된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원스텝 두스텝 오마이갓. 그래서 시작한 나의 [9 TO 6 직장생활]. 최선의 선택이지만 언제나 모든 선택은 동전의 앞뒤, 검의 양날과 같아서 좋은 면이 있는 반면 나쁜 부분이 나타나는 건 당연했다.




  13년  육아의 길을 지나오면서 쉽게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던 이유는 나의 바운더리 안에서 안전하게 책임감을 다해 외동 딸래미를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슈퍼우먼처럼 해결사가 되어줬고, 배트맨처럼 힘든 일은 척척 도와줬다. 사춘기 딸은 이제 그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엄마와의 시간보다 친구가 더 좋고, 책보다 유튜브를 좋아하며, 만화보다 차은우와 BTS를 사랑한다.


  딸의 나이 13살. 이제 각자의 가치관을 인정하고 서로의 길을 걸어가며 힘든 순간엔 조언과 협업을 맺어가는 동맹으로 살아가야 할 타이밍. 그래서 거리 두기를 시작했고 난 매일 아침 출근을 시작했다. 하지만 13년의 긴 시간을 온통 육아에 메여 살아왔기에 하루아침에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특히나 출근을 시작한 건 겨울 방학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방학시즌에 워킹맘이 가장 많이 걱정하고 신경 쓰는 것이 밥이라는 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녀를 둔 엄마의 본능이다. 신생아를 품에 안으면 엄마의 젖이 아이의 주식으로 변하는 것처럼. 겨울방학 나의 시작은 아침 5시 30분. 일어나서 아이가 먹을 아침과 점심을 미리 챙겨둔다. 등교를 할 때는 점심이라도 학교에서 해결이 가능하지만 방학은 그렇지 못하다. 더군다나 엄마가 없는 외동아이는 하루종일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학원을 가야 한다. 거기에 숙제까지 알아서 챙겨해야 하는 일은 루틴이 잡히지 않은 자녀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미 엄마는 직장인의 태세로 전환했고 아이가 처해진 방학 역시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임을. 


"봉아~ 일어나야지. 아침 먹어!"

"조금만 더 잘래..."


더 이상 재촉하지 않는다. 그래봤자 날아오는 건 짜증이 섞인 말투뿐이다.


"그래. 엄마가 핸드폰에 알람 해놨으니까 울리면 일어나야 해. 피아노 가기 전에 꼭 아침 먹고!"

"... 네..."


  엄마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사춘기면 어떠랴. 미운 건 잠시 뿐 자는 모습은 천사요. 시시때때로 그립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그러니 끼니를 챙기는 일은 어쩌면 엄마의 숙명이다. 아이가 알겠다는 답을 내놓으니 그제야 마음이 놓여 방문을 닫아준다. 그리고 점심까지 챙겨둔다. 그렇게 아이의 아침과 점심을 챙기는 동안 나는 물 한잔이 끝. 부랴부랴 선크림을 비비크림을 얼굴에 한 번에 뭉탱이로 짜내 로션 바르듯 쓱 바르고 출근길에 나선다. 그렇게 두 달을 무슨 정신에 지냈는지. 두 끼를 챙기고 출근을 하고 시시때때로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상황을 체크하면서 나는 일을 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현듯 생각이 스친다.


  '의외로 아이는 부모의 걱정과 불안보다 잘 해내고 있구나. 나의 걱정이 커서 아이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족하게 줬구나.' 싶은 생각.


  태어나서 백일즈음이 지나고 수시로 중이염으로 밤낮 나를 힘들게 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 아데노이드 비데 수술을 하기 전까지도 일주일에 3번은 이비인후과를 가야 했던 아이의 곁엔 항상 엄마인 내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병원도 혼자 찾아가 접수를 하고 진료를 하는 아이를 보며 대견함과 고마움이 스며든다.


  방학은 괴로웠지만 오히려 아이와 내가 한층 성숙할 수 있는 시간으로 각자의 인생을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다가올 여름방학은 얼마나 수월해질까 생각하니 앞으로 더욱 성장할 사춘기 딸의 미래가 기대된다. 물론 얼마나 싸우고 얼마나 상처를 줄지 겁도 나지만 자녀의 사춘기 역시 동전의 앞뒤, 칼의 양날 그 무게를 자녀오 함께 견뎌내야겠구나로 정리해 본다.




번외)

내가 어릴 적 무섭고 엄하셨던 친정엄마를 바라보며 이런 다짐을 했었다.


'나는 나중에 커서 엄마처럼 아이한테 무섭게 안 하고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줘야지!'


그때의 나는 어렸고 지금의 난 그 생각이 그 생각이 귀엽고 단순하게 느껴진다. 엄마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모정에 대해 감히 친정엄마에게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어 진다. 그것도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상상 그 이상이셨을 테니. 자녀는 원래 부모의 마음대로 자라지 않으려고 태어났다는 말이 있다.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아이의 자율성을 지켜주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는 게 사춘기는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난 오늘도 13살 밉지만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있는 힘껏 이해하려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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