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무실 입사 첫 번째 조건!
우리가 회사를 다닐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 중에 하나가 바로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이 아닌가. 아무리 월급에 저당 잡혀 매일 출근해야 하는 근로자라지만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최선을 다해 근무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성장과 일에 대한 성취감 역시 직장인으로서 챙길 수 있는 행복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의 경우 퇴근 후 제2의 직장인 집으로 출근해야 하는 24시간 루틴이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구직을 할 경우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이 정시 퇴근이라 말하고 싶다. 거기에 연차가 있어 행사에 무리 없이 휴가를 쓸 수 있으면 땡큐! 주말은 무조건 쉼이 가능한 회사가 너무 중요하다. 물론 고액 연봉의 대기업을 다니는 워킹맘이라면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기대해 월급의 일부를 투자하여 가사 및 육아 도우미를 채용하여 근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지만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 K-워킹맘이다. 거기에 경력을 다시 한 땀 한 땀 쌓아 올려야 하는 경력단절의 중고 신입이다.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로 중고 신입을 받아주는 회계 사무실에 채용되었다. 워낙 회계 사무실은 워라밸이 무너진 업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고기간 며칠 정도의 야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법인세 및 종소세 신고 기간엔 2주 정도는 주말 근무도 예상했다. 회계 사무실은 1월부터 매달 중요한 신고의 마감이 기다리고 있으니 나 혼자 애가 있다고 야근도 힘들고 주말 근무는 더 힘들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다.
입사하자마자 큰 업체 작은 업체 상관없이 모두 맡게 되었다. 배정받은 업체가 많다 보니 당연한 업무과다와 거기에 다른 능력 부족으로 입사 전 예상했던 야근과 주말 근무에 대한 나름의 기준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그만둔다고 말하기에도 바쁜 신고철에 대역죄인이 될 깜냥은 되지 못한다. 여기서 궁금할 수 있을 것이다. "뭣 한다고 저렇게 야근과 주말근무를 줄줄이 하는 거지?"라고. 중고 신입의 단점은 어설프게 안다는 것이 가장 크다. 아예 백지상태에서 채용되었다면 알려주는 방식으로 그냥 하면 되는 문제들도 어설프게 알고 있기에 그것을 또 나름의 방식과 생각을 대입해 고민하다 보면 1시간에 끝날 일이 3~4시간씩 걸린다. 거기에 상사는 신입이어도 어느 정도 경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알려주는 부분도 한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하는 나 역시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기도 애매한 상황이 생긴다. 어디서 어디까지 물어봐야 하지 고민하게 되니 그 시간까지 더해지면 하루에 일처리는 30%도 해내지 못하고 70%는 불필요한 시간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매일 야근의 연속 톱니바퀴는 돌아갔다. 입사 전엔 법인세와 종소세 신고 기간에만 야근할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1월부터 7월 25일까지 계속 야근과 주말근무라는 허들을 뛰어넘어야 했다. 경력을 쌓기 위해 입사했으니 칼퇴는 포기한 지 오래지만 야근 수당도 없는 상황에서 1월부터 7월까지 정시 퇴근을 다 세어 보자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 거기에 평일엔 업무를 다 해내지 못했고 거래처 사장님은 신고 마감전에 재촉이 시작되기 때문에 전화가 그나마 조금 오는 주말근무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상반기는 월화수목금금금... 토일은 가뭄에 콩 나듯 보기 드문 날이 되었다.
몸이 아파도 신고일은 지켜야 하기에 아픈 몸을 수액으로 임시 치료하고 무거운 몸을 질질 끌며 출근해야 하는 곳이 바로 회계 사무실이었다. 한편으론 이렇게 힘든 곳에서 일했으니 어딜 가도 수월하게 해내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바쁜 시즌엔 남편도 하나뿐인 딸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귀가하는 매일을 마주하니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도 일에 쫓겨 해내지 못하고, 회사 업무조차 부족해서 매일 욕만 먹는 신입의 모습만 마주하게 되었다. 집은 난장판이 되어갔고 빨래는 쌓여갔다. 그나마 남편이 퇴근 후 처리해 주는 날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그런 날이 지속되던 5월의 어느 날 무력감에 점점 잠식되어 가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감지하게 되었다. 이대로는 안될 거 같았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5분 10분 짬을 내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마인드를 달리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출근하는 아침 매일 거울을 보며 이렇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미러워크가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오늘도 잘할 수 있다"
"나는 부족하지 않다."
"나는 오늘도 성장한다."
"나쁜 마음을 먹는 그들이 나쁜 거지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다!"
"졸지 말자!! 누구보다 난 멋진 사람이다!"
...
"오늘만 버티자!"
매일 주문을 외웠다. 이렇게 주문을 외우지 않았다면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시간이었다. 상대의 상처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무례하게 쏟아내는 상사의 말들. 전임자의 일처리를 그리워하는 거래처 사장님들의 비난과 투정들. 이해하지 못해 낯설고 어려웠던 신고 업무들. 이 모든 것을 버티기 위해 무단히도 애를 썼음에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를 토닥여주고 싶다. 그래서 지금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참으로 잘 버텨냈어!
넌! 진짜 멋진 사람이고 대단한 사람이야! 너무 애썼어.
회계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어떤 조건이어야지 채용이 가능하냐고 질문한다. 무슨 자격증을 딸 수 있는지 또 다른 조건은 무엇이 있는지. 내가 느낀 채용 조건 중에 자격증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내심과 끈기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회계사무실에 채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나이와 자격증보다 중요하다.
자!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추가해 보자. '야근 수당 없어도 불평불만 하지 않고 야근 가능하며, 주말 근무도 열심히 할 수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배우려는 자세로 노력하겠습니다.'(회사마다 업무조건은 다르지만 회계 사무실은 대체로 야근수당 없고 상여로 대체하는 편임)라고. 이 문장을 추가하고 열심히 일할 의지가 보인다면 회계 사무실과 좋은 인연으로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다시 1년을 버티기로 한 나는 힘들다고 투덜대던 상반기 신고 시즌을 다시 맞이해야 한다. 일을 하며 얼마나 오만가지 육두문자들이 오가며 일하는 동료들과는 날 선 대립과 언쟁이 오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1년을 버텼으니 그 시간에서 얻은 것들이 분명 다가오는 신고 시즌을 대처하는데 제로는 아닐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오늘을 버티기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내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또 2년 5년을 다닐 생각은 애당초에 집어치워야 한다. 1년만 더 버텨 보나는 마음으로 오늘을 버티다 보면 어느새 1년이 지나 있을 것이다. 경력을 쌓기를 바라는 나에겐 최선을 마인드셋이고 나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당신이라면 먼 미래를 바라보지 말고 오늘만 버텨보자.
<마인드셋>
내가 언제 물어봤는데 왜 답변이 없는 거야?
: 물어보기 전에 먼저 찾아보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신고도 촉박한데 왜 이렇게 자료들을 안 줘?
: 사장님도 바쁘실 거야... 다음엔 미리미리 공지하고 말해서 더 악착같이 받아보자!
지만 힘드니? 나는 안 힘들어?
: 여기는 회사다. 공감을 바라지 말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에만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