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마음대로 휘두르는 칼 춤

해도 G랄, 안 해도 G랄

by 세림


어느 회사를 가던 빌런 상사는 존재하고 이해 못 할 동료는 반드시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비위를 맞추기 힘든 타입이 '뭘 해도 NO답' 타입이다. 그냥 뭘 해도 맘에 안 들어한다.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알려주고 매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업무 방식이 바뀌기도 한다. 더군다나 신입의 경우 이런 상사 밑에서 인수인계를 받게 되면 정신이 오락가락 종잡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게 뭐냐고!".


세무회계 사무실은 1월이 되면 하반기(7월~12월)까지 급여 및 사업소득등 원천세 마감 및 신고를 해야 한다. 12월 입사 후 새해에 처음으로 전자신고를 하게 되었다. 일반 법인 회사를 다닐 때는 신고할 대상자를 세무 회계사무실에 전달만 해주면 되었지만 내가 세무대리인이 되어보니 직접 더존 프로그램에서 신고건을 마감하고 홈텍스에서 변환된 신고자료를 전송해 접수증과 납부서까지 출력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각 거래처의 사장님께 납부기일 전에 전달드리는 일까지. 이렇게 쓰니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지만 막상 실무를 하는 신입은 도대체 어떤 서류를 작성하고 출력해서 철을 해야 하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신고 기준이 업체별로 모두 통일되어 있느냐? 그것 또한 사업장마다 기준과 신고 기간이 모두 다르기에 하나에서 열까지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25년 1월 처음으로 하반기 반기 신고를 하게 되었다. 인수인계를 따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당연히 모든 게 낯설었다. 신고 순서부터 시작해서 서류를 어디서 어디까지 출력하는지. 그리고 그 서류들을 어떤 순서와 기준대로 서류에 철해야 하는지까지 속사포 말투와 알아듣지 못하는 낯선 용어들을 단박에 알아듣고 정리까지 해야 했다. 그래야 또 물어보지 않고 일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때 가장 좋은 건 녹음이다) 나는 열심히 메모를 하고 그대로 서류에 철을 했다. 신입이 순서를 바꿀 깜냥도 되지 않기 때문에 설명들은 방법 그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25년 7월 상반기 신고를 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1월에 배운 그대로 진행을 하고 있었다. 사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 기억이 가물해져 지난 신고 서류철을 보고 따라 할 수밖에 없다. 또 물어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상사가 다가와 서류를 뒤적이더니 이렇게 말한다.


"아니... 왜 이렇게 철해요?"


"그때 알려주신 데로 했는데요."


"아니... 내가 언제 이렇게 알려줬어요!! 필요 없는 건 왜 출력했어요? 하.... "


'분명 그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란거지? 어이가 없네....'라고 생각했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나. 칼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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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이 더 무슨 말을 하랴. 말해봐야 내가 혼자 잘 못 이해하고 실수했다 할 것이고 말꼬리 잡고 싸우려고 한다고 말할 것이 뻔했다. 그냥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알려준 방식으로 죄다 다시 출력하고 철을 했다. 법인/개인 합쳐 60군데가 넘는 신고였다. 손은 느리지. 시간은 없지. 신고할 거래처는 많았다. 화가 나도 화를 낼 수도 없다. 왜?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신입이니까'. 하지만 난 분명 알려준 방식대로 했다. 동료 1에게도 물어보니 그렇게 설명한 게 맞고 자신도 그렇게 서류에 철을 했다고 한다. 아니 누가 틀린 것인가. 내가 먼저 핀잔을 먹으니 그 후 그 동료 1은 조용히 다시 알려준 방식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가세 신고를 할 때도 부가세 신고서 외에 부속 명세서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신고서 역시 철하는 순서가 있다. 알려준 방식으로 철해주면 다음 분기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서류에 철을 하라고 말했다. 그 순서는 때에 따라 달라졌다. 또 어떤 날은 맞는 것이 또 다른 날은 틀린 답이 되었다. 도대체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짜증이 밀려왔다. 일은 점점 쌓여가는데 별것도 아닌 일로 했던 업무를 다시 뒤엎어서 출력하고 보완하길 여러 번이었다.


그런 날이 수차례 지난 어느 날, 참다못해 점심을 먹고 적당한 타이밍에 말을 꺼냈다. 그날도 말을 꺼내 따질 생각은 추어도 없었지만 잘못된 부분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리기에 더 이상은 묵과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건 그때 사무장님께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는데요."


"제가 언제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저 그런 적 없어요."


"순서를 그렇게 하라고 정해주셨어요...."


"저 말한 거 기억 잘하고 전 그런 적 없어요. 지금 싸우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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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말했다간 싸움이 날 것 같았다. 회사라는 곳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협력하여 최적의 결과물을 내놓는 곳이지 상사 마음대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직장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내 생각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자신이 휘두르는 칼 춤이 신입의 마음을 얼마나 후벼 파는지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신나게 흔들어 재낀다. 이직 전 다른 회사에서 받아들여졌던 상식적인 대화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트러블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당장 그만 둘 생각이 없다면 누군가는 꼬리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내 탓으로 돌려 상황을 정리하는 편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당장 그만둘 수 없다면 얼굴 붉혀 무엇할까. 신입인 내가 기억을 못 했다고 마무리 짓는 게 나을 것이다.


"제가 착각했나 봐요. 그런데 저도 싸우자고 말한 건 아닙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해야 해요. 일을 스마트하게 하셔야죠!"


'아하! 스마트하게 일을 못했구나 내가...' 기분을 잡치고 싶진 않았지만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이상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차올랐다. 상식을 벗어난 대화라면 우선 내가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회사에서는 점차 말을 줄여나갔다. 해도 G랄, 안 해도 G랄이라면 그냥 말을 줄이고 날아오는 G랄이 빠른 시간 안에 사라지길 바라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배웠다. 어쨌거나 나는 경력을 쌓기 위해 이곳으로 왔으니 이런 작은 G랄에 도망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 시간들도 약이라고 1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그냥 내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겠다고 하거나 또 기준이 다른 말을 꺼내면 "제가 착각했나 봐요. 다시 고쳐놓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상황을 지체하지 않고 종료시킨다. 상사는 신입의 말을 그대로 수용할 생각이 없으니 신입인 내가 그 회사의 법을 따르는 게 평화로운 상황을 만든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어느 회사를 가도 아이러니한 상황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처할 수 있는 능구렁이 태세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죽어라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이 지옥이겠지만 그 또한 더 이상 최악을 만날 상황은 없으리라 마음먹으니 슬기로운 직장생활 아이템 하나 더 장착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 느껴졌다.


낯선 G랄은 돈주고도 못 배우는데 오히려 월급 받고 배우니
올레! 땡큐! 아리가또! 감사합니다.



눈물 나지만 아직 떨어져 나가지 않으리

어느 회사를 가든 빌런은 존재한다. 그 빌런들 사이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그 상황을 역행하려 하지 말고 그저 지나가는 시간 속 하나의 허들이라 생각하고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려야 한다. 물론 그 속에서 마음은 지옥과 천국을 수없이 오락가락할 것이다. 무조건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쉽게 버리고 도망가는 것 또한 자신의 스펙과 경력을 쌓기 위해 좋은 선택이 아님은 명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을 맞이했을 때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고 "내가 지금 어떻게 참고 일하지? 도망가고 싶다."라는 생각은 내려놓고, "오늘만 버티자! 곧 퇴근이다. 집에 가서 시원한 맥주에 발 씻고 잠이나 자야지!"라고 생각하며 당장 오늘 하루! 그 하루만 버텨내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힘을 믿고 자신을 그 시간들에 맡겨보자. 회사를 때려치우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좋은 회사를 만나는 건 하늘에 별따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더 나은 선택지가 없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뿐이기에. 퇴사가 아닌 빠른 퇴근을 노래하며 하루를 이겨낸 우리 모두가 승리자라는 걸 기억하며 자신의 애씀을 칭찬으로 마무리하는 오늘이길 바란다.




<마인드 셋>


왜 매번 기준이 다른 거야?

: 기준이 다를 때 바로 대처하는 나 자신이 진짜 대단하다!

챙겨야 할 서류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 수정신고 하지 않으려면 더욱 꼼꼼하게 잘 해내야지!

저 인간 꼴 보기 싫어서 여기를 떠나야지!

: 누구 좋으라고 퇴사를 꿈꾸는가! 저 사람보다 내가 더 젊다. 오늘만 버티자!



P.S

세무대리인 업종의 특성상 1월부터 허리업 시즌입니다.

연재를 중단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연재를 지속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 분의 독자라도 너무 감사하거든요.

검토 시간의 부족으로 글의 완성도가 많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꾸준하게 읽어주시고 읽어주실 독자님께 미리 감사 인사 드립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더 큰 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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