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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Jun 24. 2021

남은 멀고, 나는 안타깝다.

마음의 메모

나는 체면이 중요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도 어색한 어른이다.

마치 다 큰 어린이라고 해야 할까.

고민을 상담해 주다 보면 많은 이들의 걱정과 근심이 내 것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분들의 상처에 아파하며 그들의 고민에 빠져들어 함께 답을 찾으려 할 때도 있다.

결국 답은 공감과 위로 그리고 그분들의 입장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진심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가슴 한편에 스며든다.

결국 모든 문제와 인간관계의 결말은 멀어지는 상대방과 상처 받아 안타까운 자신만이 남는다는 것.

불현듯 작년 내 아이의 생일에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생일의 추억

매년 찾아오는 아이의 생일날이었지만 이 날은 특별히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나는 아침부터 마음이 조급했다.

일찍 일어나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기분 좋게 햄버거를 사러 가는 길. 아침부터 마음이 바쁜 건데 몸이 열 걸음은 더 바빴나 보다.

통유리로 되어있는 유명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를 앞에 두고 나는 그만 '저 좀 보세요~'라고 하듯 붕~ 날라 자빠지고 말았다.


나란 사람은 약속시간은 5분 전엔 나가야 하고,

남들에게 버릇없다는 욕은 죽어도 기 싫어서 어릴 때부터 인사에 대한 강박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 혹시나 '나쁘게' 평가당할까 봐 항상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힘들 땐 더 버틸만하다 말하고, 아플 땐 더 참을만하다 말하고, 항상 안 괜찮아도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기 바빴다.


넘어진 그 순간 밀려드는 창피함에 나는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좀처럼 다리와 팔목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 지질 않았다.

누군가 다가와서 도와주기라도 한다면 더 창피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안간힘을 다 해 괜찮은 척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친 곳을 대충 털어내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햄버거를 주문했다.

손바닥에서 피가 흘렀다. 길거리와 매장 안에 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코로나로 마스크라도 쓰고 있어서 다행이다'생각했다. 왼쪽 청바지가 살짝 찢어졌다.

아팠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한 난 누구보다 괜찮은 척 햄버거를 부여잡고 최대한 절뚝거리지 않고 퇴장했다.


차에 앉는 순간! 접힌 무릎의 통증과 피가 묻어난 손바닥에서 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하고 집으로 왔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상처들을 훑어보니 양 손바닥과 두 무릎은 피가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틀 후,  왼손에는 깁스가 채워져 있었고 두 달 정도가 지나갈 무렵 다친 왼쪽 무릎에는 살가죽이 살짝 튀어나와 딱딱하게 혹이 한 자리를 꿰찼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은 순간이다. 이토록 상처가 크게 남을 만큼 아팠는데 남의 시선만 신경 쓰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다. 정작 그 사람들은 나에 대해 검은 점만큼도 기억해 내지 못할 텐데 말이다. 아마 기억력 좋은 어떤 사람은 그저 피 흘리던 햄버거 사는 아줌마로 스치는 기억에 하나였을 뿐인데 말이다.

하지의 깊고 늦은 하늘

남의 시선보다 나를 더 챙기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더 놔야 하는 나를 발견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참고, 배려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모든 분쟁과 껄끄러운 인간관계는 다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좋은 게 좋다고. 그러나 정작 내가 상처 받고 아픈 환자가 될 거란 생각도 미처 하지 못 한 채 말이다.


그저 스치는 인연 중 하나일 뿐인데 남 보다 나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남의 시선보다 나의 가족을 더 신경 쓰고 사랑하길 자신에게 부탁해야 한다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남의 시선이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고,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그러니 남의 시선보다 나를 더 안타깝게 생각하고 먼저 돌봐줘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주문을 외운다.


비록 누구도 듣지 못하는 주문이지만 꽤나 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상담받는 분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해드린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 남이 아닌 가장 안타까운 사람.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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