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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Jun 02. 2021

연애도 별로지만, 결혼은 더 싫어

ch1. 나는 결혼하면 모두 독립할 줄 알았다.

나에게 결혼은 상상만으로도 숨 막히고 짜증 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환경,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을 핑계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는 것.

그런 남녀가 한 지붕 아래에 정착해 삶을 꾸려 나간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힘들고 버거웠다.


한참 빠져보던 드라마에선 커플들이 지지고 볶고 헤어지고 그러다가 극적인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그것뿐인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돈 많은 재벌남,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는 멋진 남주, 여주는 싫어하는데 끈질기게 구애하다 결국 사랑을 쟁취하는 세상엔 없는 로맨티시스트 남주. 그건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영화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지 현실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들이라 생각했다.


'나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너를 어떻게 책임져!' 평탄한 내 삶에 어둠이 내려앉고 컴컴한 동굴 속에 갇혀 평생을 살아야 할 것만 같은 숨 막히는 결혼은 이번 생애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나이 20대. 어른들이 쉽게 물어보곤 했다.

"우리 세림이는 언제 커서 결혼할래?"

"넌 커서 누구랑 결혼할 거야?"

그때마다 내 대답은 단 하나!

"결혼 안 할 건데요! 엄마랑 평~생같이 살 건데요."였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엄마 역시 내게 하시는 말과 다르게 얼굴에는 미소를 보이셨다. 깊은 마음속엔 하나밖에 없는 딸과 결혼으로 헤어지는 게 못 내 아쉬움이 남으셔서 였겠지.


연애보다 결혼이 더 싫은 이유에는 나의 가정환경 탓에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지독하게 사랑했으나 이별해야만 했던 아쉬움만 남는 사랑. 그로 인해 나를 오롯이 홀로 키운 엄마’를 보며 내게 사랑 따윈 그저 ‘한 없이 하찮고 가볍다’라고 느끼게 했다.     

중2 때는 학 천 마리를 접어준 남자 친구가 싫다고 헤어지자 말하고,

고1 때는 깃털 폴라티를 입고 나온 남자 친구가 창피해서 헤어지자 말하고,

고3 때는 한 살 어린 연하가 부담스러워서 헤어졌다.

이게 연애라고 해야 하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남자 사람 친구! 왜 그땐 그리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졌는지. 나는 집착도 싫고, 만나는 건 더 귀찮고, 한마디로 '독립심이 강한 구속받기 싫은 그런 여자'였다.

아마도 내면엔 ‘엄마처럼 살지 말자!’라는 생각 때문에 나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어벽을 만들었던 것 같다.     

연애보다 친구가 더 좋았고, 혼자 보는 영화를 더 즐겼으며, 뭐 하나에 꽂히면 앞뒤 안 보고 푹 빠지는 타입이었다. 더불어 실증도 초 스피드급의 성격. 그런 내가 누군가와 연애를 하며 느끼는 두근거림, 잘 보이기 위해 나를 신경 써야 하는 모든 과정들, 힘겨운 밀당, 불안정한 관계에 대한 두려움 등이 모두 감정 소모이자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족이 아닌 타인이 나를 사랑해 봤자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정들고 마음 아프게 헤어지느니 애초에 시작하지를 말자! 괜히 코 꼈다가 인생 망친다.'라는 생각이 정말 강했던 20대였다.     

드라마와 현실에서도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대상은 바로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친구 중 한 명은 사랑 때문에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민 갔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며 우울증에 빠졌고, 또 한 명은 사랑 때문에 꿈도 펼쳐 보지 못하고 일찍 결혼해 항상 인생의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이토록 내가 연애보다 결혼을 기피하고 싫어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그런 내가 어디에 빠져서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했는지는 지금도 아이러니하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를 곰곰이 떠올려 보자면 단연코! 자주 안 보는 것?!     

누군가는 군대를 가면 헤어지고, 기다리다 지쳐 다른 사람을 만나곤 한다는데, 나는 군대에 있던 그와 떨어져 자주 볼 수 없었던 탓에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깊었다. 아마도 자주 만나고 서로의 시간을 더 많이 차지했다면 구속에 지치고 밀당에 쓰러져 우린 이미 남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연은 따로 있다'라고 노래처럼 들려오던 그 이야기를 내가 몸소 체험한 느낌이랄까.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의 연애는 3년이라는 시간을 선물해 줬고, 그렇게 하기 싫었던 결혼은 ‘이 사람이 아니면 다시는 못 할 것’처럼 간절하게 내 마음을 움직여 버렸다.      

지금의 남편도 결혼은 싫고 연애는 좋으며 아이는 더 싫어했던 자기중심적이며 독립적인 남자였다. 이렇게 글로 써보니 정말 남녀 사이의 정이 싹트고 콩깍지가 씌며 결혼의 문턱을 넘는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고,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런 내가 한 남자를 사랑하고 결국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했던 친정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결혼생활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첫날밤부터 후회를 안겨줬지만 벌써 난 연애 4년, 결혼 10년 차 한 아이의 엄마로 성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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