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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Nov 15. 2020

넌 나의 운명이었을거야. 누구나 하는 착각!

군인이랑 사귈 줄 꿈에도 몰랐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처음 그 남자를 만났다. 우린 서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유도 그럴만한 게 난 3년 만난 첫사랑과 헤어져 2년째 슬픔에 허덕이고 있었고, 그는 연상의 여자 친구 4년이 넘는 연애를 몇 번의 이별을 되풀이해가며 이어오던 중이었다. 우연히 친구의 친구로 한 두 번 만난 게 인연이 되어 술 한 두 번 마신 게 전부였으며 영화 한 번 같이 본 게 끝이었다.

그렇게 그는 조용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군인이 되었다.


일 년이 흘러갔고 각자의 삶을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했다.

난 첫사랑과 헤어진 지 벌써 3년이 흘렀고, 남자도 5년을 넘게 만나온 연상의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난 고등학교 시절 키워왔던 연극배우의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 다니고 있던 탄탄한 회사를 겁도 없이 때려치우며 한 참 연극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두려웠고 외로웠고 힘들었다.

모든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였을까 힘든 하루 마지막에 걸려오는 그의 전화는 온전한 쉼터였고 힘든 나의 하루를 풀어낼 수 있는 대나무 숲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는 하기 싫었다. 첫사랑과의 가슴 아픈 이별은 나에게 마음의 감옥을 만들어 버렸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엔 겁 많은 바보가 되었다.

이대로 가끔 수화기 넘어 서로를 위로하고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웃음을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었다.

연애는 싫지만 친구라는 타이틀 속에 숨어 오래 머물기를 희망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화가 왔다. 자연스럽게 그의 목소리에 정이 들었고 점점 그의 목소리를 기다리게 되었다.

매일같이 걸려오던 전화가 어느 날 갑자기 한 달가량 끊겨버렸다. 예고도 없이..


'훈련을 갔나?... 왜 전화가 없지?'

'뭐야... 뭔 일 있나?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 전화 왜 기다리는 건데!! 뭔데? 전화 오기만 해! 안 받는다!'


그렇게... 기다림은 길었고 난 그의 전화를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새 그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음을... 서서히 빠져들었고 힘든 하루에 많은 위안이었음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오랫동안 했던 연극이 끝난 마지막 공연이 있던 날이었고 헤어지기 아쉬움에 연극 멤버들과 술을 기울이던 중이었다.

시끄러운 소음을 벗어나 밖으로 나와 전원 버튼을 누르는데 아직도 떨리고 설레던 그 순간이 지금 생각해봐도 이렇게나 가슴이 두근거릴 수가 없다.


"여보세요...?"

"........................."

"왜 말이 없어... 여보세요?"

"모야... 웬일로 전화했어? 난 또 죽은 줄 알았네..."

"그냥 바빴어... 잘 지냈어?"

"당연하지... 잘 지냈지."

어색한 통화가 한동안 이어갔지만 난 너무 반가웠고 그동안 느끼지 않았던 떨림이 전해졌다.

어디서 나온 용기였을까? 아님 이대로 전화를 끊으면 다신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었을까!

"왜 자꾸 전화하는 건데... 나한테 할 말 없어?"

"무슨 할 말"

"그니까... 할 말 없는 거야? 그럼 다시는 전화하지 말고!"


될 대로 돼라~ 무슨 똥 배짱이었는지 난 질러 버렸다. 그의 입에서 내가 좋다는 말이 나오길 바랬다.

그는 신중했고, 크리스마스이브에 휴가를 나올 거라며 그때 이야기 하자며 전화기를 끊었다.

이브에 만난 그도 나와 같은 감정에 연락이 없던 한 달가량을 고민하고 절제하며 참았다고 말했다.

서로에게 진지했고 그렇게 우린 전화기로 안부를 묻던 친구 사이에서 연인이 되었으며 사랑에 빠졌다.


사랑은 계획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어있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서울역에서 하염없이 울던 1시간...

첫사랑과 헤어지고 보름을 울며 지내다 쓰러져 응급실을 갔었더라도...

첫사랑과 헤어지고 두 번 다시는 사랑 따위에 흔들리지도 빠지지도 않겠다고 결심했더라도...

이렇게 다시 두 번째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 남자와 4년을 연애하고 엉겁결에 결혼해서 결혼 9년 차에 육아 9년 차 외동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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