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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Nov 23. 2020

술이랑 결혼하지 왜 하필 나였어야 했니

남편 술이랑 결혼하지 그랬니

남편이 군대를 제대하고 나와 함께한 연애는 4년! 결혼은 9년 차! 지금은 웃으면서 도란도란 밤마다 맥주 한 잔, 소 주 한 잔을 기울이며 하루의 일상들을 나누지만 이 놈의 술 때문에 연애할 때는 몇 번을 만나고 헤어지고, 결혼해서는 여자가 나간다는 집을 남편이 나가버리는 황당하고 우스운 꼴을 당했는지 글을 쓰며 다시금 떠올리니 울화통이 치밀고 남편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싶다. 이혼을 안 하고 지금까지 버틴 나 자신에게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고 싶다.


'참 잘 참아 냈다. 너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낸다.'



연애할 때는 둘 다 술을 좋아하는 말 잘 통하는 동갑내기 커플이었다. 연애 4년 동안 그렇게 죽이 잘 맞던 세상 둘도 없는 너와 나였거늘, 결혼하고 정반대에 상상하지도 못 한 세상이 펼쳐졌다.

결혼하고 신혼도 없이 한 달만에 임신을 하게 되었고 반강제적으로 남편은 좋아하던 술친구인 나를 잃어버렸고, 나 또한 술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는데 유일한 낙이 사라져 버렸다.

술을 좋아하는 건 범죄도 아니요!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임신한 아내를 내버려두고 술을 먹고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님들은 욕먹어도 마땅하다!

여자는 임신하는 순간 엄마가 되고 남자는 아이를 키우면서 아빠가 된다고 누가 그런 정답을 말씀하셨는지 찰떡같은 표현이다.

임신으로 인해 처녀 때는 없던 몸의 변화들, 호르몬 변화로 오는 불안감, 뱃속에 있을 하나의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과 긴장감은 10달 내내 나를 행복하게도 했지만 힘든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런 와이프를 놨두고 자신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허구한 날 술 먹을 생각만 하는 남편이 참으로 미웠다.

어느 날은 임신하고 막달을 향해가던 시기였다. 오랜만에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며 집을 나서는데 반드시 전화는 꼭 받으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자정이 넘고 새벽이 되어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다.

임신의 호르몬 장난으로 예민할 때로 예민해진 나는 배가 뭉치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분노를 느꼈다.

춥지도 않은데 온 몸이 덜덜덜 떨렸다. 아마 나도 꽤나 좋은 성격이 아니라는 걸 이날 확신했다.

그냥 안 들어오면 포기하고 자면 될 것을 뭐가 그리 화가 나고 억울했는지 급기야 서러움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나만 엄마야? 나는 안 놀고 싶냐고!! 놀고 자빠졌어. 진짜!!  집에만 와봐.'


결국 남편은 밤이 새도록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난 아침 동이 트는걸 보고서야 잠시 탱탱볼이 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날은 곧 아빠가 되면 언제 이렇게 놀  수 있겠냐며 친구들이 억지로 나이트클럽을 데려갔다고 한다.

그 후에도 자주 가드만 꼭 그런 핑계를 대더라. 다행히도 딸이 태어날 기운이 남편에게 느껴졌는지 출산  당일에는 집을 지키고 있었기에 두고두고 원망할 건더기 하나는 줄었다.

지금도 자신의 감과 촉이 세상 제일이라고 그렇게 자신을 칭찬하기 그지없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딱 100일 최선의 아빠가 되어줬다. 딱 거기 까만! 100일이 지나고 남편은 선언했다.


"100일 동안 새벽엔 내가 애 봤으니까 이젠 네가 다해... 몸조리 100일까지만 하면 되잖아!"


입으로 나온다고 다 말인가... 입은 먹으라고만 있는 게 아니다. 머리에서 한 번 생각하고 토해내야 그것도 말인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따질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아마 이때가 내 결혼 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3년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때부터 남편은 회사 핑계를 대고 일주일에 많으면 5일을 매일 새벽 3시가 넘어서 귀가했다. 빠르면 새벽 1시였으며 어쩌다 일찍 퇴근하고 오는 날은 저녁 9시. 이때는 딸아이를 막 재우고 난 후라 집안은 조용해야 했고 컴컴했다. 그때 신랑이 했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박혀 있다.


"집에 일찍 들어오면 모해. 반겨주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컴컴한 집구석에서 뭐하라고 이래서 내가 허구한 날 새벽에 들어오는 거야!"


남편은 매일 술냄새를 풍겼고 매일같이 새벽에 들어왔다. 친정살이 중이던 나는 매일 밤 친정엄마에게 남편 대신 핑계를 대야 했다.


"네 남편은 뭐하는 사람인데 매일 같이 술 먹고 새벽에 들어온다냐... 애 아빠 맞니?"

"회식이래... 지점을 몇 개 관리하니까 그것만 매일 돌아도 일주일이 모자란다고 하더라고요..."


친정엄마는 내가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들이겠지만 남편과 친정엄마 사이에서 술 때문에 매일 밤 나는 안절부절못해야 했다. 차라리 친정살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남편과 나는 벌써 이혼하고 찢어졌을지도 모른다. 친정엄마 덕분에 매일 나는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친정엄마와 함께 살지 않았다면 벌써 남편에게 소리치고 괴성을 부르며 싸웠을 것이며 내 딸에게도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거라 장담한다.


연애 때는 몰랐다. 술 좋아하고 대화 잘 통하는 남자면 결혼해서도 재미있게 언제나 신혼처럼 연애 때처럼 살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결혼은 연애와 달랐고 현실은 상상 그 이상으로 천지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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