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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Dec 07. 2020

4주년이 주말이면 우리 결혼할까?

돌이킬 수 없는 말장난

인연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시작되고,

필연은 우연을 가장해 우리에게 운명의 콩깍지를 씌운다.


삶 속에서 거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인연 속에 나와 그는 친구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다.

나는 3년이라는 연애기간 동안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배우였지만 연극 무대에서

20대 후반의 정열을 불태웠고, 그는 사고로 인해 늦은 군생활을 마쳤다.

제대 후에는 장거리 연애로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 했던 만남에 아쉬움이 가득한 나날을 보냈다.

우린 서로에게 더욱 집중하며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하루를 채워나갔다.


3년이 넘어갈 무렵 서른을 앞둔 어느 날 나는 난임이 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고,

이대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한다면 아이는 어떡하지?

아이 없이도 평생 둘만 행복할 수 있을까?

수많은 걱정들로 가득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장거리 연애인지라 쉼 없이 전화를

주고받으며 매일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날도 똑같은 날 중에 하루였다.


"봉아~ 일은 잘 마쳤어?"라고 그가 물어왔다.

"웅... 이제 자려고 너무 피곤해... "

"아참! 우리 올해 4년 된다. 벌써~ "

"진짜! 그러네!! 벌써 우리 4년이네..."

"우리 4년 되는 날 주말이면 확 결혼 해 버릴까? 어차피 일요일만 내 친구들 올 수 있어!"

"엥? 뭐야... 일요일이 주말이 아니면... 그럼 우리 결혼 안 하고 쭉 연애만 하는 거?"

"잠깐만......... 어?.... 어! 뽕아!!!! ~ 우리 헐... 대박!"

"왜? 설마?"

"야~ 우리 결혼해야 하는데? 일요일인데?"

"진짜? 정말? 그럼 해야지!! 운명? 이거 운명?"

"와 진짜 신기 대박!"


사랑이라는 건 수많은 우연 속에서 필연이라고 믿는 것! 그리고 필연이 운명이라는 확신 속에서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을 우리는 사랑의 결실이라고 믿는다.

나는 신기했고, 그도 놀라워했으며 우린 분명 필연 속에 묶인 운명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장난처럼 내뱉은 말에 진짜 결혼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우린 함께 달려갔다.

결혼 준비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눈치 볼 시집식구도 없었고, 나를 시집보낸다고 사윗감을 재고 따질 친정 아빠가 없었다.

누가 보면 참 외로운 두 집이라고 하고도 남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나는 빨리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유년 시절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왕따 아닌 왕따도 당했고,

"아빠 없어서 저렇지.."라는 돌팔매를 맞기 싫어 엄마에게 나는 더 엄하고 무섭게 자라와야 했다.

친정엄마는 외동인 나를 두고 가장으로서 매일 일을 가야만 했다.

그래야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었고, 학교를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된 지금 그때 당시에 친정엄마를 회상하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무섭고, 얼마다 고달팠을까!


그는 일찍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되었고, 군대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임종을 미처 지켜주지 못했다.

집에서 언제나 혼자였고 그 또한 외로움에 지쳐갈 즈음이라 우린 같은 공통분모를 통해 더욱 주저 없이

결혼을 향해 열심히 달렸다.


결혼 준비 6개월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그는 내게 월급을 입금시켰다.

결혼 하자는 이야기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성사시킨 우리였던 지라 결혼할 돈이 한 푼도 없었기에

둘의 월급은 고스란히 합쳐져 그 돈으로 예식장을 잡고, 신혼여행과 웨딩플래너 등의 모든 비용을 부모 힘 하나

빌리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해 나갔다.


친정엄마는 부모가 없는 그가 과연 나를 얼마나 사랑해 줄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딸인 내가 그를 사랑했기에 아무 조건도 따지지 않고 흔쾌히 받아 주었다.

사실 우리 친정엄마는 남자의 어깨와 키를 보신 것 같다.

지금도 가끔 "안서방! 그때 진짜 멋있었어! 그래서 결혼 허락했잖아!"라고 말하신다.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친정엄마와 함께 합쳐 살 로 결정도 내렸다.

이 부분은 말할 것 없이 언제나 감사하다.


첫 번째 이유는 결혼하면 혼자 남겨질 친정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많이 아프셨고 당뇨와 지병으로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할 것 같았다. 또한 단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기에 함께 살면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 믿고 합가를 선택했다.

두 번째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 없었다. 함께 살면서 한 푼이라도 더 모으면 경제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합가를 선택했다.


하지만, 결혼 전에는 몰랐다. 아니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친정살이 또한 시집살이 못지않게 힘들고 어렵고 눈치 볼 일이 많다는 것을...

프러포즈를 못 한 게 미안했던 그는 결혼 한 달 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종로 어느 갈매기 집에서

'고기 냄새를 폴폴 풍기며 자글자글 꼬인 나의 곱슬머리!' 모든 것이 프러포즈에 하나도 걸맞지 않은

상황과 모습일 때 너무나 순박하고 서툴게 프러포즈를 했다.

둘의 이름이 동일하게 들어가는 "J"이니셜로 만든 목걸이로 갈매기 집에서 무릎을 꿇고 결혼을 하자며 외쳤다.

얼마나 창피하고 민망하던지, 하지만 너무 행복했고 사랑스러웠다.

이중적인 모순인가... 좋지만 싫고, 사랑스럽지만 창피한 그렇지만 행복한 프러포즈였다.


결혼 준비과정에서 단 한 번에 트러블 없이 사이좋게 결혼 준비를 했고,

이대로라면 결혼해서도 우린 절대 싸우지 않고 싸우더라도 금방 화해하는 천생연분,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바늘과 실 혹은 신발 한쌍 혹은 젓가락 한쌍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우린 11년 11월 27일 일요일 주례 없는 결혼식을 치렀다.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가 기획하고 함께 한 결혼식이 었으며 엄마의 주례사로 모두가 눈물바다였던

따뜻하고 완벽했던 날이었다.


9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린 웃으며 말한다.

"그때... 자기가 4주년에 결혼하자고 안 했으면 우리 결혼했을까?"

"음... 아마도... 모르겠네..."

"치... 나도 거든!!!!"


결혼은 타이밍이고 타이밍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신기한 마법이 있다.

우리는 그날 운 좋게 행운의 마법에 걸린 걸까? 재수 없이 흑주술에 얻어걸린 걸까?

그건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끝까지 서로에게 행운의 마법이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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