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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Jul 15. 2021

너와 나의 적당한 거리

나는 장거리 연애파

"이번 주 주말은 어디서 볼까? 빨리 보고 싶다."

"나도~ 주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왕복 3시간 거리. 그와 나는 매주 1번 만나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달콤하고 설레였던 그 날들의 추억. 바로 나의 장거리 연애다.


우리의 연애가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남들은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장거리 연애'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장거리 연애의 결말은 대부분 이별을 향했다. 그럼에도 내가 장거리 연애를 오래 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독립적이면서 구속받기 싫어하는  성격 덕분이 아니었을까? 자주 보지 못해도 외롭지 않았고, 오히려 일정한 기간을 정해두고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나만의 연애 방식은 장거리 연애에 아주 적합했는지도 모른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면 사랑이 부질 없다고 느껴졌다. 연애의 밀당도 싫었고, 누군가에게 익숙해 지는 그런 감정낭비는 더욱더 싫었다. 언제 찾아 올지 모르는 이별의 순간을 마주 하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이별이 그 누구보다 싫은 어렸을때부터 외로운 사람이었기에 정들고 헤어지느니 처음부터 혼자인 것이 차라리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누구도 예측 없는 소나기와 같다.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 만나는 부담 보다, 기다림을 선사하는 장거리 연애가 좋은 나!


인연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시작되고, 필연은 우연을 가장해 연인들에게 운명의 콩깍지를 씌운다.

친구의 친구로 우연히 만나 놀이공원 한 번 가고, 영화 한 편 같이 본 게 우리 인연의 시작이자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군대에 있던 그가 내게 꾸준히 전화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군인의 신분으로 나의 애인이 되었고, 제대 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린 장거리 연애를 쉼 없이 이어갔다. 남들에 비해 특별하지도 재밌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우리의 연애가 헤어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들을 생각해 본다.


첫 번째로 '잘 맞던 동갑내기 커플이라는 점'이다. 언제나 솔직 담백했던 그의 입담은 연애 기간 내내 나를 즐겁게 해 다. 결혼 후 그의 입담이 독설로 변할지는 몰랐지만. 아마도 사랑에 눈이 멀어 '독설이었음에도 솔직한 입 담꾼'이라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존중한다며 존댓말을 쓰거나,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독단적인 커플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연애시절 회를 잘 먹던 그가 사실은 회를 싫어한다는 것도 결혼 후에 알았을 정도로 회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투정 한 번 없이 배려해 주는 로맨틱한 구석도 있었다.


둘째로 연애를 오래 하려면 코드가 잘 맞아야 한다는 건 진리! 우리의 연애를 끊임없이 행복한 세계로 안내해 준 건 다름 아닌 '술'이었다. 연애 당시 서로 차가 없었기에 시외버스로 그가 우리 동네로 오거나, 중간지점인 서울에서 만나야만 했다. 그럼 낮이어도 맛집을 찾아가 적당한 술과 함께 데이트를 즐겼다.

취중진담 속에서 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거침이 없었다. 결혼 후 이혼의 고비를 수없이 만들어줬던 이 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연애를 하며 가장 코드가 잘 맞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일주일에 한 번만 마음껏 만날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간절했다.

평일은 각자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고, 주말은 우리를 위해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최선을 다해 데이트를 했다. 좀 더 빨리 만나려고 30분 일찍 나간 적도 있고, 아침부터 설레어 새벽에 깬 적도 있었다. 난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줄 아는 여자였나?'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기본 5번 이상은 통화를 하며 일상의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고, 주말에 만날 때는 헤어지기 아쉬워 땀이 차도록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한 주는 언제나 활기찼고 그를 만나는 주말을 기대하며 행복했다.

잔잔하지만 속은 출렁이는 바다처럼

이런 우리에게도 '최대의 고비'가 있었다. 연애 기간 통 들어 가장 화가 났던 그날은 연애 3년 차가 되던 날이었다. 호러물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가 3D 공포영화를 삼성역 영화관에 예약 했고 나와 만나기로 한 주말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나간 약속이었지만 약속시간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오 마이 갓!


연애하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당해본 건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나는 막막할 뿐이었다.


'지금 나 바람맞은 건가?!...' 싶을 때 한참 울리던 전화를 그가 받았다.


"아직도! 자는 거야?"

"... 몇 신데..."

"........................ 시계 안 보이니..."

".... 헐!! 어떻게 해... 시간이 왜 이래... 미안해!"

"뭘... 어떡해! 지금 와... 그래도 영화 1시간 더 있어야 시작하니까!"

"나 지금 씻고 출발해도 족히 2시간은 걸릴 텐데..."

"... 그래서!... 나 집에 가??" 바보 같던 순간이다. 묻는 대신 그냥 집에 갔어야 했다.

"... 아니야 빨리 갈게."


어이가 없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미련하게 집에도 가지 못 하고 그렇게 한 참을 기다렸다. '내가 잠에게 밀린 건가?' 싶은 생각에 내 존재가 이리도 하찮은 건가 싶어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주말에 한 번 만나는 우리의 약속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만약 그때 내가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면 우리의 인연은 그대로 끝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하염없이 기다렸고 2시간이 지나갈 즈음 그는 택시에서 내려 헐레벌떡 뛰어왔다. 영화가 시작된 지 30분이 훨씬 지나 겨우 입장하게 되었고, 영화 상영 시간 내내 나는 소리없이 울고 말았다. 분명 우린 호러 영화를 보고 있었지만 우는 나를 보고 누군가는 슬픈 로맨스 영화를 보러 온 줄 알았을 것이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열 번 중에서 아홉 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 못하면 전체를 잘 못 한 것처럼 치부해 버린다. 그런 마음을 우리는 가끔 편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장거리 연애라고 다를 건 없다. 어느 날은 바빠서, 어느 날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평소와 다른 그 하루를 마주할 수도 있다. 자주 보지 못해서 꾸역꾸역 만나려 했고, 일주일에 한 번뿐인 만남을 지켜내기 위해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했던 그 룰을 깨지 않으려 무던히도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수없이 좋은 날들 속에서 한 번의 실수를 마주했을 때,
함께한 시간들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그는 미안해했고, 지금은 오히려 약속시간 엄수를 더욱 철저히 외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우리 연애를 지켜내기 위해 큰 결단을 내렸다. 바로  집 근처로 이사를 오기로 결심한 것! 이사 결정은 빨랐고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 덕에 우린 매일 만날 수 있는 단거리 연애로 접어들었다.


3년을 이어왔던 우리의 장거리 연애는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단거리로 좁혀진 연애의 시간들은 마음의 거리까지 가깝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속전속결 1년 만에 우린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이처럼 장거리 연애의 결말은 결혼으로 향하거나 슬픈 이별을 맞이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인생의 모든 선택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만약 우리가 어느 한쪽도 이해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았다면 과연 결혼을 하고 부부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헤어질 수 없다면 배려하고 사랑하고 싶다면 오히려 내 삶에 집중해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긴 연애를 이어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 결혼까지 완벽하게 골인했다고 해서 그 결혼생활이 엄청 행복하고 즐거우며 매일 밤 사랑을 속삭이는 꿈결 같은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연애는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는 걸 머지않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결혼의 현실이 그렇게 쉽게 깨질 거라고는 식장에 들어설 때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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