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외할머니
일단 모녀 5대의 탄생연도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나의 증조외할머니는 1899년(?)
나의 외할머니는 1916년 생
나의 어머니는 1934년 생
나는 1961년 생
내 딸은 1987년 생
내 기억 속엔 엄마의 외할머니 즉 나의 증조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 나는 울 엄마의 손을 잡고 그 증조외할머니를 뵈러 다녔고 30대 였을 엄마가 집에 들어서면서
" 할매 저 왔습니더" 하면
방문을 열고 " 그래 왔~~나" 하며 반겨주시던 할머니가 기억 속에 있다.
그런데 그 증조외할머니의 탄생연도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나는 증조외할머니부터 내 딸까지 이르는 모녀 5대의 삶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다.
추석 연휴 전부터 이민진 소설 <파친코>를 하루 3시간씩 4일에 걸쳐 읽었다. 미니 시리즈는 볼 수 없다. 애플 TV 독자도 아니고 유튜브로 볼 수 있다는데....그러고 싶진 않았다. 윤여정 배우가 주인공의 노년역할로 나온다는 것이 훨씬 더 알려져 있는 미니시리즈다. 하지만 원작소설 읽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지. 후후후
서사적인, 한 여자를 중심으로 위아래 4대에 걸친 삶에 대한 이야기라 읽기도 편하고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적인 묘사와 흐름이 어렵지 않아 쉽게 읽어나갔다. 그 시대적 상황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에 지금의 독자들은 괜한 눈물과 심금을 적시기도 하는 것 같다. <파친코>를 읽으며 나의 윗대 모녀 3대의 삶과 조금 오버랩되어 지금까지 나의 엄마가 살아계실 적 조금씩 들려주었던 당신의 오래된 기억 속의 삶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싶어 졌고 내 딸에게 이 모녀의 관계로 이어져 오고 있는 삶에 대해, 담담하게 삶을 살아가는 그분들을 기억하고 시대적 상황에 힘들게 저항하지 말고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전해주려는 의도도 있다.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아마 증조할머니, 외할머니, 나의 어머니. 그분들이 살아낸 조선말기, 일제강점기, 625 전쟁시대, 경제부흥기 시대 약 100년에 가까운 보통의 여자들이 겪은 사소한, 혹은 별거 아니지만 그 시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나의 딸이 역사적 흐름이란 큰 안목과 포용력 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또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증조외할머니는 보쌈을 당해 재혼을 하신 분이다.
증조외할머니는 2명의 남편이 있었다.
첫 남편과 첫 딸이자 두 분 사이의 독녀인 나의 외할머니만 자식으로 둔다. 그 증조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 병으로 별세하셨다 한다. 그래서 20살도 안된 증조외할머니는 자식 없이 상처한 분과 재혼한다. 보쌈이란 형식으로 시댁에서 나오게 되신 것이다.
이런 사연도 엄마는 내가 어른이 된 후에야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하셨던 다음에 오는 말.
"나의 외할아버지는 파평 윤 씨고 외할머니는 재령 이 씨야. 아주 양반집안이었어. 두 번째 할아버지도 양반이었대"
" 외할머니는 시집올 때 버선을 100켤레를 가져오신 분 이래. 그래서 살아생전 평생 그 버선을 신으셨어"
나는 여기서 조선 말기 시대의 혼수 및 예단 문화를 살짝 엿보게 된다.
19세기말 여자는 시집가면 자신이 평생은 아닐지라도 자신이 시댁의 경제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먹고 살아갈 혼수를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증조외할머니는 버선 이외 또 어떤 혼수를 가져갔는지는 모르나 분명 당신이 시댁에서 먹고살아도 눈치를 안 볼 만큼의 혼수를 부모님들이 주셨을 것이다는 게 나의 학문적 추측이다.
요즘도 면면히 이어져 오는 혼수라는 관습이 조금은 왜곡되어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이후 100년도 더 지난 지금 2024년.
맞벌이 부부는 아내도 남편만큼 경제력을 지니고 있으니 가사 또한 분담하는 게 우리의 오래된 관습에 더 합당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남자가 집안일을 왜 해? 집안일은 여자일이지"라는 MZ세대는 없다.
당연히 전업주부는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공평한 경제적 역할론이라는 생각이다.
육아? 독박육아? 이 부분에 대해선 좀 더 고찰해야 할 문제 이긴 하다.
나의 증조외할머니는 재혼 이후 딸만 6명 낳으셨다. 아들이 없다.
그래서 내 엄마는 이모가 6명이나 된다. 나이 차도 얼마 안나는 이모도 있다. 그런데 나에겐 자세히 말해주지 않으셨다. 밝히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없어 증조외할머니네는 양자를 들이면서 분란이 많았던지 내 어릴 적 한참 동안 양자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지만 나는 양자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없다.
시대는 변하고 사회도 변하지만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삶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024년 9월 24일 빅토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