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장 시대의 도래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사는 게 힘들어 실현될 수 없는 환상을 드라마나 웹툰으로 만족하는 건지 모르겠다.
방송 드라마를 별로 보지 않는 나는 화면 속 남자주인공의 멋진 슈트모습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푸후후
처음 보는 배우였다. 유은호역의 이준혁. 이 나이에도 젊고 잘 생긴 남자는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단 비주얼로 성공한 드라마다. 나 같은 사람의 눈길을 끌 정도였으니.
아무리 잘 생겨도 극 중 역할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그냥 잘 생긴 배우도 있네... 하고 그냥 넘긴다.
이번엔 유은호 덕분에 넷플릭스에서 몰아서 봤다. 그래도 마무리가 좀 시시했지만 나름 의미 있는 결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혼으로 바로 결말을 짓지 않는 걸로 봐서.
<나의 완벽한 비서>를 보면서 2018년 드라마 <김비서가 왜 이럴까>가 오버랩되었다.
둘 다 인기 웹툰을 드라마로 만들 작품이라 비현실적인(?) 내용과 해피엔딩으로 끝나리라는 추측으로 불편한 마음 없이 즐겨도 되는 특징이 있다.
고작 8년이란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내가 살아낸 60년의 세월 동안 그렇게 변하지 않던 남성중심의 사회적 서열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아무리 웹툰이라지만.
보스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미모의 능력 있는 여비서 대신 애 딸린 돌싱이자 잘생기고 정의감 있는 남자비서라는 좀 생소한 직책으로. 놀랍지 않은가? 세월의 힘이.
남성보다는 여성의 환상을 만족시켜 주는 이런 드라마는 힘이 쎄다.
나도 어릴 적 할리퀸 로맨스소설을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 고등학생 때 읽은 이 소설은 수험생의 아주 짧은 탈출구였기에 시험이 끝나면 딱 한 권만 빌려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수험생의 그 고난한 생활을 잠시 잊게 해주는 유일한 오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랑에 대한, 남자에 대한 환상을 무럭무럭 자라났고 세상에서 오직 나만을 사랑하는 남자는 친절하고 자상하며 게다가 엘리트에 좋은 직업을 가진 부자였다.
다행은 나는 소설을 읽을 때만 그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금발미인도 아니고 매력적인 몸매의 소유자도 아니고 한국에 사는 그것도 저 남쪽의 시골에 사는 키 작은 검은 머리 소녀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위의 두 로맨스 웹툰드라마는 마음 편히 현실을 잊게 하는, 나에겐 킬링타임용이지만 어디 이삼십 대 젊은 여성들에겐 남성을 보는 시선을 좀 왜곡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약간의 걱정이 된다.
가까이 있는 남자 친구와 드라마 남주를 혹시 오버랩하지는 않을까? 후후후 물론 요즘 젊은 여성이 그렇게 현실성 없지는 않지만 문득문득 비교되지 않을까나?
' 도대체 내 남자 친구는 왜 이준혁처럼 부드럽게 말을 하지 않을까?'
' 왜 내 남편은 왜 이준혁 같이 애들과 잘 놀아주지 않을까? '
내가 듣기엔, 말 그대로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를 둔 내 주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요즘의 30대 부부들은 우리 때와 다르게 남성들이 가정중심적으로, 여성 중심의 가정생활에 맞추려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한다.
젊은 여성들이여
이런 시대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 앞서 살아낸 우리 oldgirl이 얼마나 투쟁했는지 알아주면 좋겠다.
노력하지 않으면 변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남편은 변화시키지 못했고 아들은 시대에 맞는 사고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는다.
웹툰은 웹툰을 볼 때만 잠시 시름을 잊으시라. 멋진 사랑을 꿈꾸시라.
내가 힘 있는 사장이 되었을 때 완벽한 비서를 채용할 기회가 온다는 걸 깨달으시라
내가 한 가정의 중심이 되어 모든 것 다 책임질 때 남편은 비서 역할에 만족할 지도. 그 모습이 정말 내가 원하는 남편의 모습인지도 같이 고민하길 바란다.
시대는 변한다.
젊은 여성 그대들의 노력으로 가부장사회에서 가모장사회로 변화되는 사회를 맞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