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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마나님의 하소연

행복은 총량제일까나?

by 빅토리아

했을 뿐 몇 년을 다녀도 눈인사만 했을 뿐인 문화센터 일본어 수강생 K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어제 오후.

나는, 나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곧이곧대로 듣고 이해하며 그 너머를 잘 생각하지 않는다 좀 단순한 사고를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보다 조금은 더 나이 있으신 그분의 말을 그냥 들고 주고받은 대화를 적어본다..


"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돌아서면 그 시간에 한 단어가 하나도 생각 안 나.."

"저도 그래요. 한 달 동안 수업을 안 듣고 쉬었더니 정말 하나도 안 들려요"


" 나는 예전에 정말 잘 살았거든 집에 아니 68세까지 봄이나 가을에는 한 달에 10일 정도밖에 집에 안 있었어요. 주로 해외여행을 다니거나 해외골프 치려 다녔는데..."

" 와우... 정말 좋으셨겠어요. 부러워요. 남편분이랑 같이요? "


" 아니 가끔은 남편이랑 같이 골프는 갔지만 주로 친구들이랑 다녔지. 남편은 일로 바쁘니까 잘 못 다니고.... 집에 일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정말 재미있게 놀았는데.... "

" 선생님(남편분에서 바꾼 호칭임)은 정말 멋진 분이시네요?"


나도 가끔씩 해외골프를 가기도 하고 또 가끔씩 친구랑 해외여행을 다녔다. 그건 은퇴 이후 30여 년 직장생활과 가족치다꺼리 등으로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보상이라 여겼다. 하지만 기꺼이 와이프를 편하게 다니게 하는 586 남편은 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부러워서 던진 말인데


" 울 남편은 내 친정에도 너무 잘하고 나한테도 내가 하고 싶은 거 막은 적도 없어"

" 정말요? 그런 남자분 참 드문데..... 나이가 어떻게 되셨죠?"


" 올해 82살이에요..." 하고 한숨을 내시며 말을 이어가신다.


" 6년 되었어요. 병수발한 지가. 3번 수술했는데 지금은 내가 어디 나가면 꼭 물어봐요.

또 어디 가?라고 그래서 스트레스받아요. 처음 병시중 들 땐 고맙다고 하더니 이제 당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나한테 잘해줬고 고맙게 했기에 나도 정말 성의껏 했는데...

휴우... 내가 이제 체력이 떨어졌는지.... 감기도 잘 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힘들 때가 많아요. 그래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더라고요"

" 힘드시겠어요. 근데 젊을 때 그렇게 잘하셨으니 할 수 없네요. 사람의 도리는 해야 하는 거니까요"


아마 K여사님은 그 나이대의 여성들 중에서도 아주 여유롭고 풍요롭게 살아오신 분이신 것 같다. 외모상으로도 평범한 인상의 분이시지만 행동이나 말투에서도 두드러지지 않아 그렇게 마나님일 줄은 사실 몰랐다. 그녀가 젊었을 때 가정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사위한테 평생 대우를 받을 만큼 친정이 어떻게 사위를 대했을지 사실 내 머리로는 짐작되지 않는다.

K여사 남편분은 세상에서 가장 잘해 줘야 하는 사람이 자신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동년배에서 정말 흔치 않은 남성임이 틀림없다.

근데

와이프에게 여행의 자유와 골프의 기회를 한껏 준 그 뒷배경이 무엇이 있을까나?라는 생각을 나는 하지 않는다. 후후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성격이라.


K여사의 정말 부러운 지난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워하다가 역시 행복은 총량제구나 하고 약간의 안심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한 말이 좀 의외였다.


" 내가 남편을 정성으로 안 보살피면 애들이 남편을 무시하고 가볍게 대할까 봐 늘 신경 쓰고 있어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내가 병든 남편을 정성으로 대하지 않으면 애들은 엄마를 무시하고 가볍게 대할 것 같은데...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평생을 일한 아버지를 제대로 간병하지 않는다면 엄마의 직무유기를 나무라지 않을까나? 왜 아빠를 무시할까? '


왜냐하면 세상일에 공짜는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가 상대방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은혜를 공짜로 여기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부부가 결혼 40년이 지난 현재, 사이가 좋거나 나쁘거나 같이 살아온 긴 세월 동안 서로의 역할은 어느 정도 했으터. 그 역할의 수고로움은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부 서로 상대방에 대한 도리는 하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나.


나는 나에게 아직 채워지지 않은 행복의 남은 양이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아직 살아가고 있다.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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